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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별세… 글로벌 삼성 이끌어낸 '신경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오전 3시 59분에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2014년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

 

故 이건희 회장은 국내 일류 기업이었던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이끈 최고경영자다. ‘양보다 질’,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등 신경영철학과 과감한 투자로 삼성의 체질개선에 앞장섰고, 전자·반도체 부문의 선구자로 나서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회장의 취임 당시 9조9000억원이던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이 회장이 쓰러진 해인 2014년 338조6000억원으로 34배나 성장했다. 같은기간 주식은 시가총액 9000억원에서 318조7634억원으로 348배 증가했다.

 

1942년생 대구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일본 와세다대학교 상과대학을 거쳐 1966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했다.

 

이 회장은 1966년 동양방송에 입사하면서 삼성그룹 경영에 뛰어들었다. 19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로 임명됐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79년부터 1987년까지 삼성물산 부회장을 지내며 후계자로서의 경영 수업을 받았다.

 

이 회장은 취임 전 이미 삼성의 주력 분야인 반도체의 발전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고 이병철 창업주를 설득하고 사재를 털어 1974년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도록 설득했고, 미국 실리콘밸리를 드나들며 전문 인력을 확보했다.

 

삼성 반도체는 1983년 12월 ‘64K D램’을 출시하고 반도체 시장에 데뷔했다. 1992년 세계 최초 64메가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면서 점유율 1위를 지속 달성했다. 2019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메모리 시장 점유율은 D램 41.4%, 낸드플래시는 27.9%에 달한다.

 

이 회장은 1987년 고 이병철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46세의 나이에 그룹 총수의 자리로 올라섰다. 그는 취임사에서 “1990년대까지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취임 5년 차부터 전면에 나서 저렴한 가격과 무난한 기능을 경쟁력으로 삼던 삼성의 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대표적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일류여야만 한다며 ‘양보다 질’의 경영방침을 강조했다.

 

당시 이 회장은 임원들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 가전매장에서 먼지투성이로 구석에 놓여있던 삼성 TV를 발견하고 경영진을 질타했다. 뒤이어 삼성사내방송 SBC의 몰래카메라 영상물에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호텔에서 열린 선언식에서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불량은 암”이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내놨다.

 

1993년 6월 초부터 8월 초까지 이 회장은 사장단, 국내외 임원 등 1800여명과 회의 등을 열었다. 당시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 시간은 350시간으로, A4 용지 8500매에 이르는 분량이었다. 이후 삼성은 ‘7·4’제 도입과 라인스톱제 등을 추진하며 불량률을 낮췄다.

 

이 회장의 품질경영을 상징하는 또다른 대표적인 사건은 ‘애니콜 화형식’이다. 삼성 무선전화기 사업부의 무리한 제품 출시로 삼성전자 휴대폰의 불량률은 11.8%까지 치솟았고, 이에 150억원 상당 불량 휴대전화와 팩시밀리 15만 대를 불태우는 극단적 충격요법을 동원했다.

 

이후 삼성전자 휴대폰의 불량률은 2%대까지 떨어졌다. 같은 해 8월 애니콜 제품군은 국내 시장 점유율 52%를 기록하며 당시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였던 모토로라를 제쳤다. 이는 훗날 ‘갤럭시 시리즈’로 대표되는 삼성전자 휴대폰 성공 신화의 초석이 됐다.

 

이 회장의 선진적인 경영시스템과 기업문화는 1997년 IMF 위기, 2009년 금융 위기 속에서도 삼성이 성장할 수 있는 기틀로 평가받는다.

 

반면 이 회장의 젊은 시절 꿈이었던 자동차 사업은 아쉽게도 실패로 끝났다. 삼성그룹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하고 1998년부터 승용차 'SM5' 판매를 시작했지만, 외환위기와 치열한 경쟁에 밀려 1999년 4조300억원의 부채를 안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정경유착, 무노조 경영 등의 과오를 남기기도 했다. 이 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수차례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고 법정에 섰다. 이 회장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사건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확정받았지만 사면복권됐다.

 

2000년에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과 관련해 불법 승계 의혹을 받았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2005년에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수사받았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2008년엔 1000억대 세금포탈 혐의와 차명계좌가 적발되면서 삼성관련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경영에서 물러났고, 징역 3년과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받아 2010년 경영에 복귀했다.

 

평생을 고집한 ‘무노조 경영’도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5월 이재용 부회장의 사과와 함께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한편 유족들은 이 회장의 장례를 총 4일간 가족장으로 치를 예정이며 28일 발인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등이 있다.

 

[ 경기신문 = 편지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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