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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조 마리아 여사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을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맘먹지 말고 죽으라."

 

사형 전,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이 편지는 이렇게도 요약 기록되었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2012년 공무원 장기연수프로그램 첫날에 이 편지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낮에 국립현충원 참배를 하였고 오후에 2박3일간의 현장 합숙교육이 이어졌다. 공무원 교육에서 정말로 필요한 내용이라는 공감을 했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1862~1927)여사는 러시아 동부 각지를 돌며 동포들의 독립의식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강연활동을 전개했다. 1907년 7월 안중근은 독립운동을 위해 고국을 떠나고자 돈의학교 교장직을 사직하고 모친인 조마리아에게 작별을 고하자 여사는 아들 안중근에게 “집안일은 생각하지 말고 최후까지 남자답게 싸우라”격려했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안중근이 북만주와 연해주에서 풍찬노숙하며 독립운동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안중근(1879~1910)의사는 1909년10월26일 하얼빈역에서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안중근의 의거는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던 국내외 독립운동가는 물론 중국의 혁명운동가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고, 더 나아가 일제의 한국침략을 주시하던 서구 열강의 주목을 끌어 낸 사건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는 삶의 큰 교훈이 되었다. 조국을 떠나 중국 땅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들의 애국심을 조금이나마 알게 하는 말씀이었다. 같은 시각 동일 장소에서 강의를 들었던 전국 시도의 공무원들은 숙연한 마음에 휴식시간에도 말수가 줄었다. 그리고 자신이 1910년을 마주한다면 안중근 의사가 되겠다 다짐했다. 그래서 장기교육 1년이 결코 길지 않았고 보람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