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에 쓰러진 채 눈을 뜬 남자. 휘청거리며 걷다가 집 한 채를 발견한다. 난장판이 된 집안, 거실에는 이마에 낫이 꽂힌 남자가 피를 흘린 채 죽어 있고 방안에는 피투성이가 된 여자가 신음하며 헉헉거리고 있다.
"눈 좀 떠봐!" 남자의 외침에도 여자의 숨소리는 오래 가지 않는다. 인기척에 열어본 다락방 문. 안에 있던 남자는 숲으로 도망간다. 다락방 안 반대편에 나 있는 또 다른 문을 통해.
상쾌한 기분 덕에 낮에는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일단 밤이 되면 숲에는 나무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군데군데 팬 물구덩이의 눅눅함이 있고 비현실적으로 커보이는 달이, 그리고 깡마른 나뭇가지에서 밑으로 줄을 치며 내려오는 거미가 있으며 숲 밖에서는 미처 존재를 깨닫지 못했던 내가, 그리고 감춰뒀던 아픈 기억이 숨어 있다.
데뷔작 '꽃섬'으로 호평을 받았던 송일곤 감독의 작가적 관심은 '상처'에 있는 듯하다. 전작에서 세 여자의 상처와 희망이 추상적인 로드무비에 담겨 있었다면 23일 개봉하는 두번째 영화 '거미숲'(제작 오크필름)에서 한층 더 치열해진 상처는 미스터리라는 장르의 옷을 입고 있다.
미스터리의 차원에서, 감독은 꽤나 영리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퍼즐의 조각들은 섬세하고 이들이 조합되는 방식도 리듬감이 있는 편. 감독의 연출력은 중간중간 던져지는 강렬한 이미지에서 세세한 소품과 연기까지 영화와 이를 보는 관객들까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주인공의 기억 속에 꼬리를 무는 사건을 쫓으며 퍼즐 맞추기의 즐거움에 빠져 있다보면 어느새 머리 위로 엄습해 오는 것은 숲의 눅눅함만큼 무겁게 가라앉은 주인공의 슬픔과 상처다.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관객들을 각각의 과거로 빨려들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자신이 쫓던 남자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결국 교통사고까지 당한 남자. 운 좋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고 혼수상태 끝에 2주일만에 깨어난다. 친구이기도 한 형사 성현(장현성)을 만난 그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남자의 이름은 강민(감우성). '미스터리 극장'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그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은 아내를 빼앗아간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와 그에 대한 상처 탓이 크다.
한참 절망에 빠져 있던 중 그 앞에 어느날 신입 아나운서 수영(강경헌)이 나타난다. 서서히 마음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 그는 '거미숲'에 대한 제보 편지를 받게 된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곳은 시골 마을의 한 사진관. 그곳에는 아내와 닮은 여자 은아(서정)가 기다리고 있다.
죽음과 기억이 낳은 혼란과 슬픔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와 닿는다면 거기엔 감우성의 연기 덕이 크다. 극장 문을 나서도 지워지지 않는 잔상은 그가 연기하는 강민의 슬픈 눈동자다. 죽은 아내와 사진관의 여자, 1인2역을 연기한 서정을 비롯해 주.조연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하다. 상영시간 113분. 18세 이상 관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