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손스타의 스타트랙] MMA 선수와 등장 음악

 

이번 가을 MMA(Mixed Martial Arts) 즉 종합 격투기계에서는 굵직한 뉴스가 쏟아져나왔다.

 

첫 번째 뉴스는 29전 전승의 무패 파이터인 UFC 라이트급 챔피언 하빕 누르마고메도프(Khabib Nurmagomedov)가 10월 25일 도전자 저스틴 게이치(Justin Gaethje)와의 3차 방어전을 끝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매 경기 괴물 같은 그래플링으로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고 있던 그였기에, 매우 아쉬운 소식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뉴스는 지난 11월 1일 <UFC 파이트 나이트>에서 유라이어 홀(Uriah Hall)과의 은퇴 경기를 했던 미들급 파이터 앤더슨 실바(Anderson Silva)의 소식이다. 한국 나이 46세인 그는, 최장기간(2,457일) 타이틀 보유, 최다 타이틀 방어(10회) 기록 등, 14년간 옥타곤에서 수많은 대기록을 써 내려간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비록 이날 시합에서 4라운드 TKO패를 당했지만, 승패를 초월한 진짜 격투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길었던 격투기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보통 격투기 선수들을 기억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그 선수의 얼굴을 비롯한 신체적 특징이라던가, 몸에 있는 타투의 문양, 주력 기술을 비롯한 파이팅 베이스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국적과 체급, 소속 체육관의 이름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그 이외에 전적과 대립 구도에 서 있는 선수들을 통해 기억되기도 하고, 명경기의 한 장면으로 각인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바로 각 선수의 등장 음악이다. 

 

앤더슨 실바는 이날도 그의 등장 음악인 디엠엑스(DMX)의 ‘Ain’t No Sunshine’과 함께 등장했다. 나 역시 오랜 실바의 팬이었기에, 언제나 그 음악이 흐르며 등장할 때면 그의 링네임 ‘The Spider’가 떠오르며 옥타곤 안에서 상대방을 조여오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곤 했다. 그 음악은 실바 그 자체였다.

 

다른 예를 들어 보면, 몇 해 전 미들급 랭킹 2위 료토 마치다(Lyoto Carvalho Machida)와 랭킹 4위인 루크 락홀드(Luke Skyler Rockhold)의 경기가 있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스타 파이터인 료토 마치다와 합병되어 사라진 단체 스트라이크 포스의 마지막 챔피언 출신인 루크 락홀드, 이 두 사람 모두에게 챔피언을 향한 최종 관문의 의미를 가진 경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경기에서 무력하게 패배한 료토 마치다가 등장할 때 나오던 음악은 바로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의 대표곡 ‘Jump Around'였다. 하지만 내 기억 속 료토 마치다의 등장 음악은 이 곡이 아니라 린킨 파크(Linkin Park)의 ‘Breed it out’이다. 아마 많은 그의 팬들이 린킨 파크의 이 곡을 들으며 입장하는 그를 그리워했을 것이다. 물론 그동안 그가 오아시스(Oasis)의 ‘Fuckin’ in the Bushes’ 같은 곡을 등장 음악으로 사용한 적도 있지만, 비장하게 도복을 입고 등장하는 그의 모습에는 긴장감 넘치게 흐르는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린킨 파크의 곡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다. 마치 디제이 다루드(DJ Darude)의 ‘Sandstorm’이 흐르면 ‘도끼 살인마’라는 별명을 가진 MMA 선수 반더레이 실바(Wanderlei Silva)가 문을 박차고 튀어나오는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처럼, 린킨 파크의 음악은 료토 마치다의 이미지와 더불어 내 머릿속에 이미 각인되었던 것 같다. 

 

예전에 나와 같은 체육관을 다니는 MMA 선수와 함께 등장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희한하게도 그 친구는 경기할 때마다 자주 등장 음악을 바꿔 쓰길래 그 이유를 물어봤다.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꽤 단순했다. 경기에 패하면 다시는 그날 사용했던 등장 음악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십분 공감이 갔다. 지독한 훈련의 시간을 지나 링 위에 올라 상대와 맞붙기 전 마지막으로 듣는 승리를 향한 주술이 바로 등장 음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기장 안에서 울려 퍼지는 ‘Ain’t No Sunshine’을 앞으로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하지만 그간의 앤더슨 실바의 커리어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의 인생의 2막을 응원하고 싶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