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돌아오겠다'던 남편의 말이 아직도 생생해요"
꽃다운 18세 나이에 남편을 6.25전쟁 국군 지원병으로 전쟁터에 보낸 뒤 생사를 알수 없는 남편을 54년째 찾고 있는 70대 초반의 할머니가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곧 돌아오겠노라"는 남편 엄희성(당시 29세)씨의 애절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다는 김봉녀(72)할머니.
김할머니는 1.4후퇴 직전인 지난 1950년 12월 24일 고향인 평안남도 대동군 금제면에서 서울시 서대문으로 남편 엄씨와 갓 돌이 지난 아들 창식(당시 2세)과 함께 피난왔다.
이날 남편 엄씨는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향토방위법이 선포되면서 서대문 경찰서에 국군 지원병으로 징집됐다.
남편 엄씨는 징집되던 25일 김할머니에게 "전쟁터에서 곧 돌아오겠다"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경찰서로 향했다.
김할머니는 이날이 남편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김할머니는 경찰이 "이 증명서를 가지고 있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을 돌봐준다"고 말해 남편의 지원병 증명서를 가지고 어린 아들과 함께 대구로 또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1954년 대구에 있던 김할머니는 3년째 남편과의 연락이 두절되자 아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남편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김할머니는 혹시나 남편이 묻혀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지난 84년부터 1년동안 동작동 국립묘지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 헤맸다.
김할머니는 또 서대문경찰서와 육군본부, 경찰청, 전쟁기념관 등을 방문해 남편의 지원병 증명서를 제시하며 남편의 생사를 확인했다.
그러나 육군본부 등은 지원병 증명서에 남편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지 않았고 군번이 없어 남편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고 김할머니에게 통보했다.
보훈청 또한 김할머니에 대한 보훈심사를 했으나 남편 엄씨의 신분확인이 안돼 유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김할머니는 "남편 없는 여자로 한평생을 비참하게 살았다"며 "남편은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 나갔는데 남아 있는 가족들은 국가로 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억울해 했다.
김할머니는 또 "남편의 생명과 맞바꾼 지원병 증명서를 만들 것이 국가라면 국가는 남편과 유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원 보훈지청 관계자는 "전사나 생사여부가 확인돼야만 유족으로 등록할 수 있다"며 "김할머니에 대해 보훈심사를 했으나 남편분의 신분확인이 안돼 유족으로 등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할머니는 지난달부터 '남편 엄희성을 찾습니다'라는 문구를 새긴 옷을 입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