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검(名劍)이나 보검(寶劍)이라 일컫는 도검류를 보면 지금도 신비감과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칼의 경외심은 종교적 신앙심이라고 할 만큼 대단했다. 이런 사례로 우리 역사에서는 김유신을 들 수 있다.
예컨대 「삼국유사」에 의하면, 그는 이미 칠요(七曜)의 정기를 받았으므로 태어날 때 등에 칠성(七星) 무늬가 있었다 하며,「삼국사기」에는 17살 때 혼자서 중악(中嶽) 동굴로 들어가 도를 닦은 끝에 홀연히 나타난 난승(難勝)이라는 도사(혹은 산신령)에게서 보검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김유신 탄생 설화와 떼어 생각하기 힘든 유물로 '사인검'(四寅劍)이라는 칼이 있다. 마침 이 사인검 유물이 각각 전쟁기념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 개최 중인 '우리나라의 전통무기'와 '천문'(天文) 특별전에 동시 출현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전쟁기념관 출품작은 육사박물관 소장품인데, 전시 주제가 암시하듯이 '무기'라는 관점에서 접근되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빌려온 민속박물관 사인검은 천문, 다시말해 별자리라는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다.
사인검이 무기라는 사실은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데 천문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그것은 거의 예외없이 사인검에는 북두칠성을 필두로 하는 별자리 그림이 도신(刀身.몸통) 혹은 자루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30여 점의 실물 자료가 알려져 있는 이런 사인검에는 칼의 주술성을 설파하는 시구가 새겨지기도 하는데 심지어 범어로 된 것도 있다.
사인검에서 사인(四寅)은 인(寅)이 4개라는 뜻이다. 12지지 중 셋째인 寅은 동물로는 호랑이요, 시각으로는 오전 3-5시이며 방위로는 북쪽으로 조금 기운 동쪽이다. 또 12달 중에서는 정월을 인월(寅月)이라 한다.
사인검은 인년(寅年)ㆍ인월(寅月)ㆍ인일(寅日)ㆍ인시(寅時)에 제작한 칼이라는 뜻이다. 寅이 4개나 겹친 이 때 만든 칼은 특히 주술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음인지 실제로는 사인(四寅)이 아닌 때에 만든 칼도 이런 이름을 붙이곤 했다.
사인검은 유래가 어디일까?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대시인인 굴원(屈原)의 장편시 '초사'(楚辭)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으니, 그 첫 대목에서 굴원은 그 스스로를 "인년(寅年), 인월(寅月), 경인(庚寅)날에 태어났다"고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사인검은 사상적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굴원에게까지 닿고 있다.
사인검과 같은 명검은 도교에서는 동경(銅鏡.구리거울)과 함께 종교적 신성성을 대표하는 양대 신기(神器)로 격상되는데, 한반도 삼국시대 규모가 큰 고분이면 거의 예외없이 보이는 환두대도(環頭大刀)라는 큰 칼 또한 도교와 밀접하다.
사인검이 음양사상을 주축으로 하는 도교에서 유래한다는 점은 그것이 대체로 암칼(자검<雌劍>)과 수칼(웅검<雄劍>)의 세트로 제작된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런 전통 또한 실로 기이하게도 중국 남방의 초나라 문화에서 기인한 '사인'(四寅)이 그렇듯이 역시 같은 중국 남방 문화권인 오월(吳越)에서 유래하고 있다.
후한 때 조엽(趙曄)이 엮은 춘추시대 오나라ㆍ월나라 이야기인 「오월춘추」(吳越春秋)에 의하면 오나라의 유명한 도장(刀匠)인 막야(莫耶)는 그 왕 합려(闔閭)의 요청에 의해 암칼-수칼 두 자루를 만드는데, 그 중 하나가 자기 이름을 딴 막야(莫耶)이고 다른 하나가 그의 아내 이름을 딴 간장(干將)이라고 하고 있다.
언뜻 흘려버릴 수도 있는 사인검(四寅劍)이라는 유물 하나에도 이런 도도한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