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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 보길도, 윤선도문학관 창작실에서

 

보길도는 기억의 창고다. 첫 장편소설을 집필했고, 어머님과 별리, 여인과 별리, 백구 토순이와 별리, 필자에게는 이별의 공간이었다. 큰형님의 공직생활을 기점으로 보길도와 맺은 인연은, 수원서 열차로 광주에 와 시외버스로 환승하여 땅끝 마을 항에 도착하면, 30분 간격으로 항해하는 철선을 타고 노화도 산양진항에서 정박한다.

 

승용차로 15분간 달리면 국문학사에 길이 남는 가사문학의 최고봉인 조선시대 고산 윤선도가 ‘어부사시사’를 지었던 곳, 보길도다. 세연정과 동천석실, 곡수당과 낙서재, 부용동 원림을 둘러보고, 예송리 해변 자갈을 밟고 건너편 예작도를 바라보면 조석으로, 지는 해의 찬미와 함께 황홀한 일출광경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여름철이면 예송리, 중리, 통리해수욕장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고, 북바위와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씐바위, 보죽산, 복생도를 둘러볼 수 있다. 백동백과 흑동백, 동박새와 팔색조가 서식해 자연을 접한다. 참전복과 멸치와 액젓은 인기다. 곳곳에 황칠밭이 보이고 정자리에는 천연기념물 479호 황칠나무가 자라고 있다.

 

장편소설『유리상자 속의 외출』을 집필하는 동안 수원과 보길도를 왕래하며 상념을 담아냈어야 했다. 말없이 피고 지는 자연의 섭리나마 배워서 실천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파리도 없이 꽃을 피우기 위해 몸살을 앓는 개나리처럼, 혹은 순간 짧은 만개 후에 참혹하게 떨어져 내리는 목련처럼, 늘 알 수 없는 현기증을 앓았다. 낮에는 극단적인 천사와 악마만 상대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슬프고 감상적인 시를 쓰다 보니 그런 거라고 자설적으로 위로하며 견뎌내곤 했다.

 

보통 사람들이 평생 한두 번 겪을까말까 한 사건들을 주로 만나고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탓에 정신분열이라도 일으킬 만큼 극단적으로 배치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까닭이다.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불행을 만나고 또 헤쳐 나오지 않으면 안되는 탈출구의 시작이자 마지막 승부사처럼 보길도와 생을 같이한 것이다.

 

필자의 소설은 경험과 상처, 울분과 승화의 과정을 되새김질한 일종의 살풀이 같은 작업이었다. 가난과 폭력 속에서 소외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아픈 기록을 이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범죄와 좌절 속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고통을 인간적인 서사로 탈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 보길도는, 어머님께서 김매던 호미를 제자리에 던져 놓지도 못하고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시기 전 병 치료를 했던 곳이다. 어머님께 첫 월급을 받아서 내의 한 벌 사드린다는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한 채 누런 상여 옷 한 벌 해드렸던 아픔들이 재생된다.

 

인간성이 메마른 시대에 작은 울림이라도 던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램으로, 35년의 문학 시계는 가파른 여정을 건너, 보길윤선도 문학관 창작실에서 글밭을 담는 행운을 얻었다. 보길도는 동서길이가 13킬로이고, 섬의 모양은 가오리를 닮은 형태다. 2천7백여 명의 주민들이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고 해조류와 전복양식으로 산다. 상록수림과 청정지역으로서 으뜸가는 남도의 향기가 가득 담겨진 섬, 보길도는 이 곳 행정의 책임을 맡는 김현란 보길면장의 애틋한 문화마인드와 사유의 빛으로 윤선도문학관에도 작가들의 흔적과 발길이 더 많아 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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