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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중국이 정화(鄭和)열풍에 휩싸여 있다는 전언이다. 본성이 마(馬)씨인 정화는 1371년 윈낭성(雲南省) 쿤양(昆陽)에서 태어나 명나라 영락제 때 환관의 장관인 태감을 지냈다.
이때 鄭씨 성을 하사 받았다. 그러나 鄭和는 공직보다는 항해가로서 이름을 날렸다. 정화는 1405년 부터 1433년까지 28년 동안 영락제의 명을 받아 7차례에 걸쳐 대선단을 지휘 동남아시아에서 서남 아시아에 이르는 30여개국에 원정했다.
이 원정대의 규모는 대선 60여척에 장병 2만 7800여명의 규모로 당시로서는 대규모 원정대였다. 정화 원정대가 인도양에 진출한 것은 포르투칼의 바스코 다가마보다 80~90년이나 앞섰다.
그런데 중국에서 정화를 영웅시하는 것은 이러한 탐험가적 항해가로서가 아니고 그 저변에는 중화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중국의 한민족이 문화의 중심이고 최고화는 우월주의가 속내인 것이다.
정화는 대선단의 이름이 원정대이 듯이 방문하는 나라마다 조공을 바칠 것을 강요했다. 자신들이 가져 간 비단·면 등 특산품을 나누어 주면서 일면선무 공작도 했다.
중국은 요즈음 이를 가지고 중국이 명나라 때부터 평화를 추구했다고 대외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 본심은 패권주의 외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최근 중국은 발해역사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고 이제는 고구려 역사를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이미 편입 시켰는지도 모른다.
중국정부 홈페이지에서 고구려 역사를 한국역사에서 제외시킨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역사를 왜곡시키는 저의는 한국도 중국의 변방쯤으로 여기는 중화사상이다. 일본이 무사정신으로 무장 독도시비를 벌이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19세기말 조선의 위기와 다를 바 없다.
滿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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