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살인마’가 검거됐다. 경찰의 발표를 듣는 시민들은 충격과 분노말고는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지난해 9월 24일 서울 신사동 2층 단독 주택에 침입해 이 집에 살고 있는 모대학 명예교수 이모(73)씨와 부인 이모(68)씨를 둔기로 내리쳐 숨지게 하면서 살인마 유영철(33)의 서울판 ‘살인의 추억’은 시작됐다.
우리는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 사이에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부녀자 10명을 잇따라 살해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사건 자체가 엽기적인데다 사건 발생 18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 1994년 7월 지존파와 은보현 사건, 1996년 10월 막가파 사건의 악몽도 전율할 공포로 남아있다. 이런 터에 미궁에 빠지는가 싶었던 서울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검거했으니 이는 불행 중 다행한 일이다. 범인은 전후 15차례에 걸쳐 모두 19명의 목숨을 절단냄으로써 역대 최단기, 최다 살인 기록을 남긴 셈이지만 그로 인해 생긴 비극과 아픔은 그와는 무관한 상처로 남게됐다. 한마디로 인면수심의 극치인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광태(狂態)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놀라운 것은 그의 범행 동기다.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생긴 전과 기록과 재소 중에 당한 아내로부터의 이혼, 자신의 빈곤을 부유층 탓으로 돌리는 삐뚤어진 적개심과 복수심을 살인을 통해 보상 받으려 했다니 벌어진 입이 닫히지 않을 지경이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범인 검거는 시민들의 불안을 더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살해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시민들이 한 걱정 덜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대의 살인마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경찰의 허술한 대응과 수사 결함은 문제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잡았던 범인을 놓쳤던 일, 사건이 났을 때마다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고 실종사건으로 처리한 것 등은 경찰 수사가 살인범과의 두뇌 싸움에서 완패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죄가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은 여죄가 있는지를 철저히 따져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에 힘써야할 것이다. 살인마는 우리 곁에 둘 수 없다. 사회로부터의 영원한 격리가 유가족들의 분노와 고통을 덜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더욱 그렇게 해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