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수
국사편찬사료조사위원
경기향토문화연구위원
신행정 수도냐 아니면 천도냐를 놓고 정치권과 지방 자치단체간 논쟁중에 있는 이때에 경기분도 무제까지 불거져 뜨거운 감자로 올려지고 있다. 경기도 땅안에 600년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도시를 경기도에 건설한 것이 기록상으로 효시인 것이다.
1300년전 개성이나 2천년전 경주도 도시계획에 의해 건설된 신도시라 볼 수 있다.
경기 수도인 수원은 우리 조상들이 230년전 현대적 의미가 깃들여져 큰맘 먹고 건설한 신도시이다.
각 도의 명칭은 역사성 지명의 풀이와 말밑(어원:語源)의 유래, 변천 과정에서 주위환경과 그밖에 관계되는 특별한 곳을 찾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중서부 지역으로 경기도를 꼽았다.
고대에는 마한의 영토로 한강을 중심으로 남안 경기 광주지방은 큰 부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후 관내도, 양광도, 적현, 기현, 경기좌도, 경기우도로 여러번 바뀌었다. 삼국시대에 이르러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립으로 한강을 중심으로 인근의 공방에 백제가 차지했고 그 후 474년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물리치고 이곳을 차지했다. 신라 진흥왕때 고구려를 물리쳐 삼국을 통일한 후 한산주, 경덕왕때 한주, 그 후 한양군이라 했다.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가 되자 양주라 개칭했고 고려 성종때 국내를 10도로 나누면서 국내도라 칭하게 됐다. 34대 공양와때에는 국내도를 경기좌우도로 나누었다.
1402년 조선 태종2년에 다시 8도로 나눌때 좌우 양도를 합하여 이때부터 경기도라 부르게 되었다.
1413년 경기북부의 일부를 강원도에 떼어주어 할양하였다. 요즘 강원도 철원군 상가번영회에서는 행정구역 조정 주민토론회에서 생활권이 경기 수도권인데 행정구역상 강원도로 되어 있어 생활에 불편이 많다며 호소하고 있다. 상인들과 주민들은 철원군을 다시 환원시켜 경기도에 오길 원하고 있다. 1896년 건양(建陽:고종33년 조선때 처음 쓴 연호) 1년 전도를 4부 30군으로 하고 관찰부를 수원에 두어 이를 관찰하는 한편 한수 이북은 따로 한성부를 두어 중앙의 직할지로 했다. 고려의 개성이나 조선조의 한성은 모두 경기도 땅이었다. 한반도를 지배하기에 산천이 좋아 요충지이며 중추적 역할을 옛날부터 해온 곳이다. 경기도의 경자는 서울 경(京)자로 왕성(王城)을 뜻하는 것이며 기(畿)자는 왕성밖에 있는 직할지(直轄地)라 하여 왕이 직접 맡아서 다스렸다.
경기도가 분도(分道)가 되면 도(道) 이름을 어떻게 기록하고 부를 것인가? 타 지방의 도 명칭을 예로 들면 강원도는 강릉 원주, 충청도는 충주 청주, 경상도는 경주 상주, 전라도는 전주 나주, 한때 경기도는 양주 광주를 합하여 양광도(陽廣道)로 불렀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경계의 기점으로 한남도(漢南道)냐 한북도(漢北道)냐 또는 경기남도, 경기북도는 경상남북도가 있어 약자로 경남, 경북으로 불릴땐 구별할 수가 없다. 양주군이 둘로 나누어질 때 남쪽은 남양주로 하고 북쪽은 그대로 양주라 했다.
경기도 한수이북은 옛날에는 경복궁에 왕이 있었으며 지금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직무를 보는 곳이 있어 여전히 수도권으로 경기도가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한수이남은 남경기도 또는 남경도라 그리고 남기도라 했으면 한다. 지금은 서울과 휴전선을 경기도 안에 안고 있다보니 각종 규제가 있어 남쪽에 비해 낙후성을 못벗어나고 있다. 경기도가 분도가 된다면 경기지역은 남경기도 지역보다 통일 후 한반도의 중심지로서 새로운 경기도의 급격하고 진보적인 발전의 단계로 접어들 것이며 경제, 관광, 행정, 문화의 도시로서 북부지역은 역사적인 종합개발이 제대로 이뤄져 희망찬 경기도로 거듭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