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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의 인천얘기 9 - 東仁川과 新浦洞

 

 1970~80년대 동인천역과 신포동 일대는 인천 청춘들의 집합소였다.

 

당시 동인천역 광장을 가로질러 지하상가로 들어가 바로 왼쪽으로 꺾어나오면 용동큰우물에 닿는다. 어스름 무렵부터 이곳에는 젊은이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대학생과 직장인, 연인, 휴가 나온 군인들이 삼삼오오 우정을 다지고, 시국과 미래를 논하고, 밀어를 나누며 청춘의 열기를 발산했다.

 

늦은 밤 술에 취해 거리에서 어깨동무를 한채 목청껏 노래를 부르거나, 여기저기 으슥한 곳에 쭈그려 앉아 배를 움켜쥐고 토악질을 하거나, 취객들 사이에 시비가 벌어지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은 위로 올라가 용동마루턱과 경동사거리, 신포동으로 이어졌다.

 

비단 술집뿐만이 아니었다. 동인천역을 나와 신포동 쪽으로 부채살처럼 퍼져있는 곳곳에 다방(음악다방), 음악감상실, 당구장, 탁구장, 빵집, 우동가게, 국화빵·붕어빵 노점, 서점, 야구연습장, 문구점, 독서실 등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길을 가다보면 어깨를 부딪칠 만큼 넘쳐나던 청춘들이 이곳에서 수 많은 추억을 차곡차곡 쌓았다.

 

특히 동인천역에서 답동사거리까지 연결되는 지하상가는 색다른 공간이었다. 인천에서 처음 개통된 이곳 지하상가는 1963년 이미 ‘지하도’가 건설돼 있었으나 상권 침체를 우려한 주변 상인들의 반대로 오랜 기간 상점이 들어서지 못하다가 인천시의 중재로 1972년부터 83년까지 현재 모습의 ‘지하상가’가 조성됐다.

 

“변변한 백화점 하나 없던 시절 인천사람들은 ‘신상 하나 득템’하려고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냥 ‘배회’했다. 걷다 보면 아는 사람 서너 명은 기본이고 조금 전 만났던 동창생을 두어 번 다시 마주칠 정도였다.” 인천시립박물관장 유동현은 어느 글에서 1970~80년대 동인천지하상가의 모습을 이렇게 썼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을 온전히 이 부근에서 보낸 글쓴이에게도 동인천지하상가는 익숙한 곳이다. 좌우로 끝없이 이어진 낯선 가게들을 구경하느라, 잘 갖춰진 냉·난방시설을 찾아 때론 혼자, 가끔은 친구들과 지하상가를 무수히 오갔다. 술을 더 먹고 싶지만 돈이 없을 때도 자주 갔었다. 오며가며 우연히(?) 만난 선배들이 주머니를 털어 2차 가라며 돈을 쥐어주거나, 함께 어울려 술자리를 즐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민방공 대피용 목적도 겸했던 당시 지하상가 위 도로에는 횡단보도가 없었다. 때문에 큰 길을 건너려면 지하상가를 이용해야 했다. 그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지하상가 200m 이내에는 횡단보도를 설치할 수 없도록 한 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이렇듯 동인천역과 신포동, 용동, 인현동, 싸리재 일대는 지금을 사는 50~60대 인천시민들의 ‘젊은 시절 아지트’이자 수 많은 추억을 심어준 마음의 고향이다.

 

그러나 1985년 지금의 중구청 자리에 있던 인천시청사가 구월동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관이나 학교, 기업의 이전은 단순히 건물만의 옮겨감이 아니다. 사람들과 그로 인해 형성됐던 생활과 문화, 활력 등 모든 것이 함께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이후 시세확장에 따른 도심기능의 재배치와 도시 개발이 급속히 이뤄지면서 젊은이들의 발길은 주안, 연수동, 구월동, 부평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동인천과 신포동 일대는 한동안 잊혀진 곳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이곳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전부터다. 차이나타운과 개항기 건축물을 활용한 적극적인 마케팅과 이곳만의 특색을 살린 아기자기한 공간들의 탄생 그리고 다채로운 축제·행사들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이곳을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한 노력들이 잇따라 펼쳐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항장 일대는 지난해 9월 한국관광공사가 진행한 스마트관광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시는 88억 원을 들여 AR, VR 등 각종 첨단기술에 기반한 인프라구축사업을 오는 4월까지 목표로 현재 한창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인천항 1부두 출입문 앞 인천세관 박물관과 역사공원 조성, 신포공공지하보도 건설, 답동성당 일원 관광자원화, 동인천역 2030 역전 프로젝트 등 사업들이 시작됐거나 착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한번 바뀐 것을 그대로 되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큰 의미가 없다. 자칫 잘못하면 ‘표본실의 박제’가 되기 십상이다. 시대의 트렌드가 그것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유형의 건물 복원도 그럴진대 무형의 문화나 정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양한 손질로 새롭게 태어날 동인천역과 신포동 일원이 과거와는 또 다른, 청춘들만이 아닌 나라 안팎의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즐기고 머물며 좋은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천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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