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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스타의 스타트랙] 사라진 합(合)


오늘은 합주실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합주실이란 말 그대로 합주(合奏)를 할 수 있게 만들어진 장소이다.

 

각 시나 도에서 운영 중인 곳도 있으나, 작업실이나 합주실 앞에 개인이라는 말이 붙지 않는 경우 대부분 사설 대여 합주실을 지칭한다. 마치 노래방과 같이 시간당 일정 금액을 내고 합주할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하는데, 리허설 스튜디오도 같은 개념이다. 방의 크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내부에는 방음, 차음 시설이 되어있고 드럼 세트, 기타와 베이스 기타 앰프, 믹서, 마이크, 스피커 등 연주에 필요한 장비들로 채워져 있다. 아마 이 땅에서 밴드를 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거쳐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내가 밴드를 시작했던 시기에 서울에는 유명한 합주실이 몇 개 있었다.

서대문의 서문 합주실 그리고 종로의 세화 합주실, 강남의 화이트 합주실 등이 유명했는데, 이름만 대면 알만한 수많은 밴드와 뮤지션들이 이곳들을 거쳐 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개인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던 밴드는 드물었기에, 수많은 밴드 뮤지션들이 모였던 이곳에서 많은 음악과 이야기가 탄생했다. 

 

나는 주로 세화 합주실로 연습하러 다녔는데, 당시 처음 본 합주실의 이미지는 굉장히 강렬했다.

종로 5가의 약국 거리를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가 좁은 입구로 내려가는 계단 벽에는 각종 공연 포스터와 메탈 밴드들의 구인 광고가 가득 붙어 있었고, 입구에 들어서면 정체 모를 퀴퀴한 록 스피릿의 냄새가 풍겨 나왔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쪽 벽에는 안내 데스크 옆으로 케이블이 돌돌 말려 걸려있었고, 탁자에는 핫뮤직을 위시한 음악 잡지와 장기판이 놓여 있었는데, 이는 잘 정리된 요즘의 합주실과는 사뭇 다른 그로테스크함이 있었다. 또한 각 방에서는 굉음이 쏟아지고, 좁은 로비에서는 치렁치렁한 머리의 사내들이 크로메틱과 스트로크를 하며 다음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90년대 중반, 홍대에 인디 밴드 바람이 불면서 서서히 홍대, 신촌 인근에 합주실이 생기기 시작한다. 십수 년 전만 해도 홍대 인근에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이제는 제법 많이 생겼다. 그중 대부분은 음악을 하는 혹은 하던 선후배들이 차려 놓고 합주팀도 받고 강습도 하고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얼마 전 홍대 인근에서 합주실을 운영 중인 밴드 출신의 후배를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합주실 이용 가격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20년 전 가격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학생이나 나이 어린 음악 키드들에게는 시간당 일이만 원이 적은 돈이겠냐마는, 그 당시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가격이라는 것이 꽤 충격이었다. 안타깝게도 철저한 경제 논리의 결과로 봐야겠지만 말이다.

 

언젠가부터 합주실보다 미디방이라는 것이 더 많아졌다. 미디방이란 개인 작업을 할 수 있게 작은 사이즈의 음악 작업실을 빌려주는 곳이다. 아무래도 컴퓨터와 관련 음악 장비가 발전함에 따라, 굳이 해당 악기의 실연자가 없어도 상당 수준의 연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혼자서도 홈 레코딩으로 양질의 사운드를 뽑아낼 수 있게 되어 그런듯싶다.

 

서서히 개인화 및 자동화가 이뤄지면서 많은 부분을 혼자서도 할 수 있고, 그 나머지는 디지털화된 기계들이 알아서 처리해 주는 세상이 되었다. 때로는 합주실의 동결된 가격만큼이나, 우리 세대의 정서가 정체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겁이 난다. 같이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진다. 가뜩이나 지금의 코로나 시국은 더욱 그런 분위기를 가속하는 느낌이다. 언젠가는 여럿이 모여 한 소리를 내기 위해 땀 흘리는 광경이 귀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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