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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칼럼] 뜨거운 냄비 속의 개구리

 

 

2021년은 우리나라 대학에서 공포의 년도였다. 인문계, 실업계, 재수생을 합친 고교졸업생 숫자가 4년제 대학 입학정원보다 적어진 사상 첫 해였기 때문이다.

 

현실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초유의 입시 충격파가 대학을 덮쳤다. 수시모집부터 조짐이 있었지만, 본격적 쓰나미는 1월 중순에 끝난 정시모집에서 닥쳐왔다. 서울과 수도권도 하락 추세가 없지는 않았다. 문제는 지방대학이었다. 초토화에 가까운 경쟁률 추락이 나타난 것이다. 학령인구 급감 때문이다.

 

여성 한 사람이 평생 낳을 걸로 예측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합계출산율이다. 이 수치가 2018년에 처음으로 1.0 이하로 떨어졌다. 이후 하락 추세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올해 예상 합계출산율은 고작 0.78명이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조사한 198개국 가운데 이 수치가 0점대인 나라는 몇 년 째 대한민국뿐이다.

 

출산율 하락과 이에 뒤따른 인구감소는 생산과 소비 위축, 경제성장률 급감, 세수 축소, 농촌 공동체 몰락, 미래세대 부담 급증 등 만 가지 악(惡)의 출발점이다. 초등학교 교과서는 국가 구성의 3대 요소를 영토, 국민, 주권이라 가르친다. 이 세 가지 축 가운데 하나가 이렇듯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2번의 보수 정부와 3번의 개혁 정부가 배턴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정체성과 상관없이 출산율 문제에 있어서는 역대 모든 정부가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물론 정책당국이 출산율 문제를 애초부터 방기한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에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했다. 이듬해부터 2021년까지 4차에 걸친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면 뭘 하나, 결과가 이런데. 지난 15년 간 이 나라의 출산율 정책은 참혹한 실패 그 자체다. 오죽하면 신자유주의의 기수인 IMF 총재 라가르드조차 한국을 ‘집단자살사회’라 불렀겠는가.

 

2011년부터 투입된 저출산 지원예산만 해도 무려 209조원이다. 기괴한 것은 예산이 늘어날수록 거꾸로 출산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산 및 육아 현실에 대한 당국의 몰이해 때문이다. 정책의 핵심이 출산장려금, 아동수당, 양육수당 지급 같은 현금성 복지정책에 머무를 뿐 젊은 세대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가에 대한 본질적 고민이 탈락되어 있는 게 제일 큰 문제다.

 

현재와 같은 현금 살포 위주 방식은 큰 병 때문에 생긴 고열을 해열제로 치료하려는 대증요법과 진배없다. 출산, 육아, 주택, 아동교육, 고용 전 분야에 걸친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절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같은 전제가 없는 한 출산율 문제는 백약이 무효다.

 

특히 여성 노동 문제가 관건이다. 경력단절 금지 및 육아휴직 등에 대한 법적,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직장별, 지역별 공공 육아시설 설치 등 실질적 인프라 구축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이런 기초 안전망이 없는데, 어느 여성이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 개인적 좌절을 무릅쓰고 출산과 육아의 모험을 감행할 것인가 이 말이다.

 

내년 5월에 20대 대선이 열린다.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후보들에게 저출산 문제에 대한 획기적 공약을 제시, 실천하도록 시민사회가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인구 급감이야말로 이념의 좌우를 불문하고 차기 정부가 온몸을 던져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냄비 속에서 서서히 뜨거워지는 온도를 느끼지 못하다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순식간에 삶겨서 죽는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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