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내놓은 ‘과천정부청사 부지 주택공급 계획’을 놓고 지난해부터 시작된 지역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과천시민들은 “과천청사를 지키겠다”며 김종천 시장 주민소환까지 추진하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반면, 일부 시민들은 “정부 정책을 못 막는다고 시장을 끌어내리면 시정은 누가 챙기느냐”며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 여야 시의원들까지 입장표명을 하고 나서면서 주민 갈등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과천시가 이토록 시끄러워진 건 지난해 정부 8.4 주택공급 대책 발표부터다. 정부가 집값 안정화를 위해 용적률 상향, 유휴부지 개발 등을 골자로 하는 수도권 주택공급방안을 발표했는데, 개발계획에 과천정부청사 일대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주민들의 반발이 일어났다.
이들은 “과천은 우리나라 대표 행정도시로, 랜드마크 격인 과천정부청사를 헐고 빽빽한 아파트를 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과천에서 20여 년 살아왔다는 김동진 씨는 ‘김종천 과천시장 주민소환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지난달 27일 소환투표 청구를 위한 서명작업에 돌입했다. 위원회는 “우리가 원하는 결론은 전면 백지화”라며 “김종천 시장이 내놓은 대안은 소용이 없다. 이중으로 과천 땅을 내주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종천 시장은 “정부에 보여주기 식 항의보다는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고 받아들여달라고 요청하는 게 맞다”라고 맞서고 있다.
앞서 김종천 시장은 지난달 22일 ▲3기 신도시, 자족용지 및 유보용지 일부 주택용지 변경과 주거용지 용적률 상향으로 2000여 세대 확보 ▲교통 여건 양호한 외곽 지역에 2000여 세대 추가 대안 검토 ▲중앙동 4·5번지에 종합병원을 포함한 디지털 의료 및 바이오 복합시설 조성 ▲중앙동 6번지는 시민광장으로 조성하자는 대안을 발표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과천지역 시의원과 경기도의원들도 이와 관련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깊은 유감을 나타냈다. 제갈임주 과천시의회 의장은 “김 시장이 발표한 대안은 시민의 뜻을 지키면서도 정부 의지를 수렴하는 최선의 방안”이라며 “실익 없는 소환을 부추기고 주민 갈등과 분열을 야기할 수 있는 주민소환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8월엔 집무실도 과천청사 유휴지 내 천막으로 옮겼다. 주택공급 계획 철회를 정부에 강력히 요구하며 일방적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천막 집무실 근무를 하기로 한 것이다.
김 시장은 현재 주기적으로 주민간담회를 열고 “시 역시 과천정부청사 앞마당을 지키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며 “시민들의 우려를 해소하고 과천청사 일대 주택공급 계획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과천시의 대안 제시와 정부 계획 철회 피력에도 막무가내식 주민소환제 서명 작업을 이어가자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과천에 사는 이모(50) 씨는 “결국 집값 떨어질 것을 걱정하는 단체행동 아니냐”라며 “정부의 기조가 주거공간 확대고, 국유지를 활용해 국민이 살아갈 공간을 만든다는 데 도시숲의 탁 트인 조망권을 헤친다며 반대하는 모양새가 보기 좋지는 않다”라고 전했다.
이들의 주장은 떨어진 집값에 근거한다. 과천정부청사를 사수하겠다는 명목 하에 시장 주민소환까지 펼치고 있지만, ‘집값 하락’이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현지 중개업소에 따르면 실제로 8·4 주택공급 발표 이후 과천 지역 부동산 매수세가 크게 줄었다. 과천 원문동 G아파트는 당시 13억 8000만원에 팔려 전달보다 1억 7000만원이나 싸게 팔렸다. 호가도 크게 떨어진 평균 14억~15억 원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2007년 주민소환이 도입된 후 소환된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는데, 그동안의 진행 비용은 결국 시가 부담하게 돼 혈세만 낭비하는 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6월쯤 주민소환이 성공할 경우라도 그때부터 이어지는 시정 공백도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도 “이미 대안을 제시했고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직까지 내놓으라는 요구는 말이 안 된다”며 “흠집 내기 식 단체행동이 또 다른 정치전에 이용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과천시의원단은 3일 “정부과천청사 유휴지 개발을 강행할 경우 시의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발휘해 저지에 나서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부동산 정책을 이런 식으로 조잡하게 만든 사례가 없다”며 “김종천 시장이 제안한 ‘대안’은 과천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도외시한 항복문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도 신빙성이 높지는 않아 보인다. 과천시가 8.4 발표 직후 전문 조사기관 ㈜현대리서치연구소를 통해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과천청사 유휴지 포함 일대 개발 계획에 대해 반대한다는 응답이 80% 인건 맞지만 공원 등 시민 휴식 공간으로 이용하자는 의견이 42.9%로 가장 많았다. 정부과천청사 일대를 시민의 소통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과천시의 대안과 일치한다.
이에 대해 과천시장 주민소환 추진위 측은 여전히 “김종천 시장에게 1년이라는 시간과 기회를 줬지만 내놓은 대안은 결국 정부가 하자는 대로”라며 “공동주택 부지를 옮긴다고 정부과천청사를 비워두겠나. 결국 이중으로 난개발 하는 꼴”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과천시의 주택공급 대안이 받아들여지든 않든 주민소환제는 진행할 것”이라며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 전체 시민의 15%인 7877명은 무난하게 서명할 것으로 내다본다”고 장담했다.
한편 정부는 4일 민주당·국토교통부 당정협의회를 열고 ‘2.4 부동산 대책’을 새로 발표했으나, 수도권 공급 지역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아 과천시 내부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 경기신문 = 노해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