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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화양연화(花樣年華) 1

 

K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식구를 이끌고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갓 돌이었던 K는 열병을 앓았고 소아마비가 와서 다리를 심하게 절게 되었다. K는 아무 목표도 없이 중학생이 되었다. 희경중학교 다닐 때 김광석(우리가 모두 아는 그 김광석 말이다!) 선배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우기도 했었다. 그래도 아무런 의욕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과 같았다. 덕수상고에 갔지만 상고를 졸업해도 장애인이 갈 직장은 없었다. 작은 아버지 신발도매상 장사를 도왔다. 노점상도 해봤다. 그러던 중 덕수상고 선배를 만났다. 마침내 K는 할 일을 찾았다. 삶에 목표가 생긴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세상이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K는 장애인 운동뿐만 아니라 ‘세상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부하고 공장에 가고 조직에 들어가고 징역살이를 했다. 그러다 장애우대학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여자였다. 장미꽃보다 민들레를 좋아하는 여자였다. 언젠가 대성리로 엠티를 갔는데 그녀는 K의 오리배를 탔다. 유난히 검은 눈에 반짝이는 눈동자, 동글동글한 얼굴에 너무나도 이쁜 미소, K는 이 여자라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했다. 대성리 강에서 K는 오랫동안 노를 저었다. 행복했다.

 

뭐라도 한마디 자신 있는 말을 하자고 그렇게 다짐하고 연습도 했건만 막상 예비 장모의 싸늘한 눈초리를 보자 주눅이 들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꾸벅 인사만 하고 나왔다. 그렇게 첫 인사를 마치고 나와 하늘을 쳐다보자 눈물이 주룩 흘렀다. ‘아! 내가 헛된 욕심을 부렸구나?’ K는 전라도출신에 고졸이고 결정적으로 장애인이고 그녀와는 7살 차이가 났다. 언감생심 처가의 큰아버지는 전두환과 육사동기라고 했다. 예비 장인은 공대를 나와서 현대계열사의 임원이라고 했다. K는 안산으로 홀로 돌아왔다. 삶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반란이 시작됐다. 그녀가 집을 나와 K의 자취방으로 온 것이다. 그렇게 둘은 동거라는 것을 시작했다. 행복했다.

 

낙성대역을 돌아 익숙한 가게 옆에 차를 세웠다. K는 차안에 앉아 아내와 어린 딸이 차에서 내려 골목을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아내와 어린 딸만 처갓집으로 들여보내고 안산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멀었다.

 

"우리는 30년 동안 기다렸는데 당신들은 30분도 기다려 주지 못합니까?“

 

언젠가 장애인이동권보장을 위해 장애우들이 오이도역 철로로 내려갔다. 그리고 맨몸으로 철로에 누웠다. 장애인도 소풍을 가고 싶었다. 불과 몇 분 만에 경찰에 전부 끌려 나왔다. 그 때 전철이 늦어졌다고 항의하는 시민에게 피눈물을 흘리며 했던 장애우의 함성이 K는 갑자기 떠올랐다.

 

내일은 안산단원장애인자립센터 정기총회 날이다. 새로 온 사무국장이 K의 책상에 자료집을 올려놓고 간다. 장애인단체 상근을 한지도 어언 30년이 지났다. 큰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의 사학과에 입학했다. 동료가 이렇게 빈정거렸다. ‘참 그 딸도 아비 닮아서 돈 안 되는 길로만 가는구만.’ K는 생각한다. ‘그래 내 인생은 단 한 번도 넉넉했던 적이 없구나. 내 인생에도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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