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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스민, 4.3 ‘그날의 제주’... 고현주 작가의 유품 속 서사를 만나다

사진과 시, 인터뷰로 만나는 제주 4.3 희생자들의 삶, ‘기억의 목소리’
20일부터 다음달 2일, 서울 류가헌 전시관서 사진전 개최... 24일 작가와의 만남 예정

 

아마도 4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30대 꽃다운 나이에, 누가 쐈는지도 모를 총에 맞아 턱을 잃고, 평생을 영양실조와 소화불량, 관절염에 시달려야 했던 한 어르신의 사연을 듣게 된 건. 게다가 흉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늘 무명천으로 얼굴을 감싼 채 외로움과 가난 속에서 60여 년의 고된 삶을 마감한, 그래서 ‘무명천 할머니’로 알려진 고(故) 진아영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단순히 ‘가슴이 아팠다’라는 표현으론 설명해낼 수 없는 심정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먹먹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그 배경에는 다음의 이유가 있었다. 이렇듯 수없이 많은, 무고한 이들의 희생이 바로 ‘제주4.3사건’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기억의 목소리/허은실 글/고현주 사진/문학동네/252쪽/1만7500원

 

 

올해로 73주년을 맞은 ‘제주4.3’과 때를 같이해 출간된 ‘기억의 목소리’는 당시 제주 곳곳에서 말없이 현장을 지켜본, 사물에 스민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책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증언이 고현주 작가의 유품 사진에 더해져 ‘기억의 시침’을 ‘과거 그날’로 돌려놓고 있는 것이다.


쌀 포대로 안감을 댄 저고리, 사후 영혼결혼식을 치른 젊은 남녀의 영정 사진, 토벌대를 피해 산에서 지낼 때 밥을 해먹은 그릇, ‘한국의 쉰들러’라 불렸다던 아버지의 성경책, 형무소에서 보내온 형님의 편지까지. 유족들이 소중히 간직해온 유품 22점과 신원불명 희생자의 유품 5점 등 총 27점의 기억 속으로 안내한다.   

 

역사라는 이름 아래 왜곡되거나 소외됐던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온전히 애도받지 못한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물’이란 새로운 관점으로 풀어내고자 했다는 게 고현주 작가의 말이다. 그렇게 유족의 보따리나 궤 등에서 오랜 세월 켜켜이 쌓여 있던 사물들의 서사가 비로소 앵글을 통해 우리와 만날 수 있게 됐다. 

 

 

고현주 작가는 2018년부터 많은 유족과 희생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4.3 관련 유품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것은 더이상 이름 불리지 않는 것들, 끝내 쓸모없어진 것들, 그래서 하루하루 닳고 닳아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들이었지만, ‘가족의 유품’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여전히 피붙이처럼 남겨진 물건들이었다.

 

이번에 선보인 책, ‘기억의 목소리’는 그러한 지난 수년 동안의 결과물인 셈이다. 여기에 시인 허은실이 기록한 인터뷰와 시를 함께 실어 이해를 돕는 동시에, 지극히 담담하지만 애틋한 공감대를 불러 일으킨다. 

 

고 작가는 “5년 전 제주도인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암이라는 병에 걸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태였다. 다만, 4.3은 여러모로 힘든 작업이 될 듯해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는데, 한 출판사 대표의 관련 인터뷰 사진 요청으로 인연이 시작됐다”며, “이왕 할 거라면 나만의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다른 작가들도 많이 찍는 사진은 굳이 나까지 찍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사물에 주목하게 됐다. 어찌보면 내가 살려고 했던 작업 같다”고 말했다.  

 

 

한편, 고현주 작가는 오는 20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 위치한 류가헌 전시2관에서 사진전 ‘기억의 목소리’를 개최한다. 24일 오후 4시에는 사진가 고현주와 시인 허은실이 함께 하는 작가와의 만남도 예정돼 있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