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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칼럼] 예술이 정치를 만나야 할 시대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1936~2011) 대통령이 유명했던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청바지를 입고 뒷 주머니에 시집을 꽂은 채 주말이면 공연을 보러 갔다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건 상당 부분 하벨이 대통령이 된 후에 윤색된 얘기이거나 그의 전기 영화에 쓸 요량으로 첨삭된 각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그렇다 하더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하벨처럼 시인이나 극작가는 정치를 해서 비교적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는 있어도 그 역(逆)은 그리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건 정치라는 영역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끌어 들일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많은 것이 달려 있음을 보여 준다는 얘기다.

 

수많은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한 것은 인문학과 예술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이 그랬다. 예술이 사라진 사회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인민에 봉사한다는 ‘전략적 목표’를 갖고 있다 한들 선전(宣傳), 선동(煽動)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벨이 체코의 벨벳혁명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늘 미완의 혁명이며 때문에 영구적으로 혁명을 수행해 나가야 하되 수평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계속해서 추구해야 한다는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와 그녀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칼 리프크네히트(1871~1919)의 얘기는, 그래서 맞는 말이다.

 

반면에 수많은 자본주의 국가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 역시 인문학과 예술의 정치에로의 수렴을 거의 생각조차 못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나라가 거의 최고조의 수준이다. 그래서 정치가 늘 천박하다. 천박한 정치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주고, 그 냉소는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무관심은 젊은 세대로 하여금 역사적 무지와 정치적 사고의 왜곡을 가져 온다.

 

예컨대 소위 아이비 리그 중 하나라는 미국 예일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아무리 부동산 부자나 개발론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시장이 됐다 손 치더라도 이 코로나19 정국에서 음식점이나 유흥업소의 영업제한 시간을 22시에서 24시까지 연장하는 것보다는 관객 수가 격감한 극장이나 공연장에 수행원없이 가는 일(시찰보다는 관람)을 정책의 우선순위로 뒀어야 했다. 극장과 공연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안팎의 자영업자까지 거의 문을 닫았을 정도다. 문화를 살리면 경제를 살릴 수 있되 방역의 정치 영역에서 가장 점진적이고도 조심스럽게 자영업자들을 살릴 수 있는 일이다. 법률 공부는 했지만 예술은 별로였던 모양이다. 상상력이 별로이다. 사람은 빵이 없으면 살지 못하지만 빵만 가지고는 절대로 살 수 없고 결국 장미가 있어야 한다는 영국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 를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강남 쟁골 마을이라는 전원 고급 주택단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희대의 사건(MBC TV '실화탐사대')을 보고 있으면 정치가가 예술적이거나 교양스러워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하벨처럼 예술가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된다. 쟁골 마을에서는 진대제 전 장관, 이인제 전 의원, 안상수 전 창원시장, 그리고 다수의 재벌기업 회장 등이 수십억원대의 집을 짓고 살면서 한 젊은 부부가 이웃 해서 작은 집을 짓는 것을 온갖 추접스러운 수단을 써서 방해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그 ‘작은 집’이 자신들의 조망권을 해치고 결국 동네 집 값(진대제의 집은 40억원으로 알려졌다.)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이쯤 되면 거의 악마 수준이다. 이런 자들과 신임 서울시장이 다시 손을 잡고 서울을 부동산 개발 공화국으로 만들려고 한다.

 

최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자신의 칼럼에서 하벨을 소환시킨 모양이다. 하벨처럼 윤석열도 정치에는 문외한이지만 대권을 잡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펴기 위해서이다. 이건 전광훈이라는, 자칭 목사라는 자가 본 회퍼의 생을 들이대는 것과 같은 일이다. 한 마디로 ‘얻다 대고’이다. 윤석열은 하벨처럼 체코의 ‘프라하의 봄’ 때 저항을 했던 인물이 아니다. 윤석열은 그 반대로 소련의 탱크에 앉아 있었던 군인 같은 인물이다. 전광훈이나 진중권을 두고 견강부회(牽强附會)란 말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 논에만 물을 끌어다 대는 일, 곧 아전인수(我田引水)인 셈이다. 이들 모두 지식인이 아니라 지식기사들일 뿐이다. 실로 조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