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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략) 갑자기 수원부(水原府)를 잘 다스리라는 명을 받드니 신은 진실로 당황스럽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 신은 삼대조정(三代朝廷)을 받들어 섬기면서 크나 큰 변화를 겪어 온 바 만가지 생각이 어렴풋한데 이같은 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중략) 근래에 와서는 거듭 흉년이 들어서 창부(倉府)의 재고가 싹 쓸어 놓은 듯 바닥나고 백성들의 형편이 매우 어려워 위기를 곧게 바로 잡을 계책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책임은 사물을 안정시킬 수 있는 위력과 명망과 전행(專行)으로 다스릴 수 있는 재주라 할지라도 물러나서 머뭇거릴까봐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 지금 병들고 쇠약한 저에게 그 책임을 맡기시니 사무에 밝지 못한 신(臣)같은 사람은 필경에 크게 이치를 그릇 치어 결코 다행스럽지 못할 것입니다. (중략) 아무리 생각해도 함부로 받아 드릴 수 없으므로 이에 감히 간략한 문자를 갖추어 숭엄(崇嚴)을 욕되게 합니다. (하략)”
이글은 풍석(楓石) 서유거(徐有渠)가 73세때인 1836년 (헌종 2) 1월 11일 헌종으로부터 수원유수(水原留守)로 부임하라는 명을 받고, 사직(辭職)을 청한 상소문의 한 대목이다. 그는 연만한데다 능력이 모자라니 수원유수 부임의 명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했지만 헌종은 “소장(疏章)을 살펴보고 모두 알았다. 경은 사양하지 말고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라”는 비답(批答)을 내렸다. 그는 1월 26이 수원유수에 부임했고, 1837년(헌종3) 12월 2일 지경연(知經筵)에 임명되면서 수원을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이 유수 2년의 행적을 적은 황영일록(華營日錄)이다. 이 일기를 보면 170년전의 수원이 훤히 보인다.
이창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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