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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손

-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박근혜 정권 때였다. 지하철 무임승차 단속반이 아내와 나를 가로막았다. 아내가 사용하는 장애인 교통카드 때문이었다. 단속반 완장을 찬 중년 사내는 장애인을 사칭한 무임승차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멀쩡한 사람이 교통비 몇 푼 떼먹으려고 이래서야 되겠냐는 식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고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았다. 퇴근길에 지친 눈길들이 아내에게 쏟아졌다. 파렴치범을 대하는 눈빛이었다. 찔러오는 눈빛 앞에서, 발가벗겨지기라도 하듯 아내는 장갑을 벗어야만 했다. 엄지를 잃은 손은 어미를 잃은 아이 같았다.

 

주체할 수 없는 모멸감에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지손가락을 잃은 아내의 손을 확인하고도 단속반은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역무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지만 어느 누구에게서도 정중한 사과는 듣지 못했다. 공공근로를 하는 일용직이라 단속이 서툴렀다며 책임을 회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역무원들이 입고 있는 조끼가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되어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조끼에는 ‘단결투쟁’이라는 구호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아내 손을 꼭 쥐고 사무실을 걸어 나왔다. 엄지 잃은 조막손이 내 손 안에서 파르르 떨었다.

 

아내의 손을 쥔 주먹에 힘을 더했다. 떨지 마라 아내야. 당신은 손가락 하나를 잃었지만 세상은 가슴을 잃었다. 사람은 없고 밥그릇만 보이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설움을 앞에 두고도 고개 돌리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숨소리를 따라 들쭉이는 허파는 있어도 생명으로 쿵쾅대는 심장은 없다. 떨지 마라 아내야.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대학을 중퇴했던 당신이 아니더냐. 돈벌이도 없는 글쟁이에게 인생을 걸어준 당신이 아니더냐. 비키니 옷장 두 개로도 신혼살림을 차렸던 당신이 아니더냐. 떨지 마라 아내야.

 

움켜쥐면 되는 것이니, 하나가 없어도 충분하다. 글씨를 쓰든, 젓가락질을 하든, 악수를 하든, 온전히 당신만의 방식이면 그만이다. 내게 있어 당신의 손은 보름달이다. 아홉 개의 손가락은 세 개의 계절을 잉태하는 꽉 찬 충만함이다.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살게 하는 완전함이다. 나는 당신의 완전함과 손잡고 겨울을 난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세상을 향해 손가락을 뻗어 세상을 그린다. 바깥세상을 내 안의 세상으로 옮긴다. 까만 잉크를 손톱에 묻혀 세상을 그리고 하얀 원고지를 더듬으며 글을 쓴다. 사람 사는 이야기를 쓴다.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살아낸 이야기를 비로소 하얀 겨울에 담는다. 그러니 떨지 마라 아내야.

 

보아라. 저기, 아내가 온다. 세 아이의 엄마가 온다. 일을 마친 여성노동자가 온다. 오늘을 보낸 계약직 노동자가 내일을 향해 내게로 온다. 노동을 마친 손을 당당하게 흔들며 환한 웃음으로 온다. 저기, 지구의 절반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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