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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타협인가 저항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㉑ 강호아녀 - 지아장커

 

중국 정부가 가장 싫어하는 감독으로 알려진 지아장커의 신작 ‘강호아녀’는 강호의 아들과 딸이란 뜻이다. 결국 강호남녀라는 얘긴데, 한 마디로 ‘강호의 사람들’이라는 의미겠다. 흔히들 요즘 강호에 도가 떨어졌다는 소리들을 하곤 한다. 이 영화 속 강호남녀에게는 의리가 중요할까 사랑이 중요할까. 지아장커는 영화 내내 그 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지아장커가 보기에 의리든 사랑이든 그게 다 돈과 관련이 있고, 사회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원래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 사회와 지금의 중국사회가 완전히 다른 지점에 서 있음을 지목하고 거기에 따라 인간형과 인간성도 변질됐음을 고발한다. 그게 다 중국 공산당의 독재와 부패에 따른 것이며, 당이 주도하는 자본주의화가 결국 천민적(賤民的) 성향을 띤 결과라는 것이라고 그는 지목한다.

 

 

이야기는 2001년 다퉁시에서 시작해 2018년 다시 다퉁시에서 끝난다. 다퉁시에서 살아가는 차오(자오타오)는 빈(랴오판)의 여자이다. 빈은 다퉁시 조직의 보스다. 그는 다퉁시의 재개발 바람에 편승해 이곳저곳의 이권에 개입해 조직을 확장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극히 허접하고 누추하기가 이를 데 없다. 2001년 다퉁시의 깡패는 마피아 급이라기 보다는 동네 양아치 수준이다. 그들은 허접한 창고 같은 데 모여 함께 ‘첩혈쌍웅’과 ‘영웅호한’ 등을 보면서 자신들의 포부와 의리가 남다르다는 것을 내심 강조하며 살아 간다. 그러나 주변 풍경은 거기에 걸맞지가 않다. 척박하고 촌스럽다.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는 ‘무도회장’도 그렇다. 그들이 춤을 추는 음악은 1978년에 히트했던 빌리지 피플의 ‘YMCA’이다. 그건 마치 중국의 공산당이 서구 유럽의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조기에 도입하려 했지만 그게 그리 쉽게 되지 않고 있는 초라한 현실과 대구(對句)되는 것이다.

 

실제로 조직 보스인 빈 주변의 인간들이 지니고 있는 의식 역시 자본주의적이기는 커녕 봉건 혹은 半봉건의 상태에서 벗어나 있지 못한 상태다. 채권과 채무 관계로 다투고 있는 부하 둘에게 빈은 관우 상을 가져오게 한 후 두 사람 모두 관우 앞에서 거짓없이 솔직하게 털어 놓으라고 강요한다. 중국인들이 여전히 관우의 영(靈)을 모시고 살며 유교적 생활양식의 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 중국 공산당은 다퉁이라는 작은 도시 역시, 중국사회 전역을 대상으로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사회주의 경제계획에 입각해 자본주의를 조기에 도입해 그 과정을 거치게 하려고 한다.

 

 

마르크스 이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사회주의가 이루어지며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은 봉건주의에서 바로 넘어 온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통과시키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 이론과 수사학(修辭學)에 불과한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자신들의 세계적 패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에 따라 중국사회의 자본주의화를 급격하게 서둘러 왔다.

 

그 결과, 현재 그 모든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지아장커는 그 기간이 바로 2001년에서 2018년까지라고 보고 있다. 그 17년간은 이 영화 ‘강호아녀’의 남녀가 겪게 되는 굴곡의 인생이 펼쳐지는 기간이기도 하다.

 

여인 차오는 남자 빈을 살리기 위해 거리에서 총을 쏘고, 불법무기소지죄로 5년을 복역한다. 남자를 위해 총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를 불지 않았던 차오는 정작 빈으로부터는 배신을 당한다. 연인에게 버림받은 강단이 생기고 독해진다. 중국의 천민 자본주의는 여자를 강하게 만든다. 그녀는 고향인 다퉁으로 돌아가 다시 마작업소를 운영하며 터를 잡는다. 가까스로 자기 삶을 되찾는 그녀 앞에 이번엔 하반신 불구가 된 빈이 찾아 온다. 차오는 과연 강호의 의리를 지킬 것인가.

 

 

지아장커는 사회주의 사회의 물적 토대를 자본주의적으로 축적해 인민의 부와 행복을 이뤄 가겠다는 중국 공산당의 계획이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를 고발한다. 자본주의를 들여 놓는 순간 사람들 모두 자본의 끝없는 욕망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 지아장커는 그점을 줄기차게 지적해 왔다.

 

극 후반부에서 차오는 휠체어에 앉은 빈에게 말한다. “난 당신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어. 그래서 이제 밉지도 않아. 당신을 받아 준 이유는 강호에선 의리가 중요해서야.” 이건 지아장커가 중국 공산당을 향해 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아장커가 중국 정부와 트러블이 많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 사회 안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닐까. 의리는 지키겠다는 것. 근데 이건 정치적 타협인가 아니면 지아장커 식의 여전한, 그리고 우회적인 정치적 저항인가. 중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