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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혁신학교가 뭐길래

 

얼마 전에 근처 초등학교에서 내년 혁신학교 신청 관련 학부모 설문조사를 돌리려다가 홍역을 치렀다.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반대한다고 학교에 항의 전화와 민원을 넣었고, 해당 아파트에는 대자보가 붙었다. 아파트 벽에 붙어있던 종이에는 혁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학력이 떨어지므로 찬성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과 17년도 뉴스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정말 혁신학교에 다니면 아이들이 바보가 되는 걸까.

 

혁신학교에 가면 학력이 떨어진다는 뉴스는 18년도에 교육부가 7년에 걸친 종단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낸 보고서로 반박할 수 있다. 기사가 났던 해를 제외한 모든 연도에서 혁신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높았다. 혁신학교에 다니면 아이들 학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실체 없는 불안에 가깝다.

 

필자는 첫 근무를 혁신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시작했다. 면접과 수업 실연을 거쳐 기간제 교사로 채용됐지만, 교사로서 큰 기대는 없었다. 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진로를 모색하던 중에 공백기를 줄이려고 시작한 직장 생활이었다.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이 없었으니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설레지 않았다. 이전까지 과외 지도를 해왔으니 학교 교사도 그와 비슷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막연히 생각하며 출근했다.

 

처음 만난 혁신학교는 말 그대로 ‘혁신’ 그 자체였다. 내가 배정된 학년에서는 교과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교과서를 쓰면 거기에 맞춰서 수업을 준비하면 된다. 교과서에서 벗어난다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비슷했다. 교과서가 이미 다 그려져 있는 그림에 어떤 색을 칠할지 고민하는 것이라면, 교과서 없는 수업은 흰 도화지를 놓고 무슨 그림을 그릴지부터 떠올리는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기준 없이 수업을 만드는 건 아니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전체과목의 성취기준과 학습 목표, 수업 차시를 적어 놓고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칠지, 혹은 어떻게 깨달음을 끌어낼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교사가 텍스트 내용을 설명하고 영상 자료를 틀어주는 기존의 교육 방식이 틀리거나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자와 영상을 눈으로 보며 혼자 공부하기보다는,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고 친구들과 토의하며 자료를 발전시키고, 발표하는 과정이 아이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쉽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데 소극적으로 참여했던 아이도 ‘즐거웠다’라는 대답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가 수업이 즐거웠다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열심히 준비한 보람을 느꼈다.

 

혁신학교에서 근무했던 시절에는 출근이 재밌었다. 초임 교사의 열정이 타오르던 시기라고 해도 출근이 재밌는 건 드문 일이었다. 이렇게 재밌는데 월급을 받아도 되는 건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학생일 때 다니던 학교와 요즘 학교는 다르구나 싶어서 교사라는 직업에 흥미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며 마음이 달라졌다. 결국 다음 해에 임용고시를 쳐서 교사가 되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혁신학교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일반 학교보다 수업 관련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은 편이고 행사도 많으며 학부모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학부모들은 학력 저하를 걱정하고, 교사들은 업무량을 걱정한다. 그럼에도 다음 학교는 혁신학교를 지망할 생각이다. 수업을 구상하는 게 제1의 업무이던 시절에는 출근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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