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극의 시대라지만 최근 지상파만큼은 다시 사실극 제작으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최근 지상파에서 방영 중인 미니시리즈 5편 모두 사실극이다. 물론 SBS TV 금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앵커 콘텐츠인 만큼 270억 원대 제작비가 들었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성비'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KBS 2TV 월화극 '멀리서 보면 푸른 봄'과 금요극 '이미테이션', SBS TV 월화극 '라켓소년단', MBC TV 수목극 '미치지 않고서야' 모두 사실극이다.
각각 아이돌 또는 스포츠, 오피스 요소가 결합되긴 했지만 판타지극이나 기타 장르극처럼 컴퓨터그래픽이나 대규모 세트장이 필요한 장르는 아니다. 또 주연들을 봐도 호화 캐스팅보다는 내실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은 판권 수출에 유리한 가수 겸 배우 박지훈을 주연으로 내세웠고, 그 외에도 배인혁, 강민아 같은 청춘 신예들을 내세워 캠퍼스극으로 꾸렸다. 시청률은 1%대에 머물고 있지만 10~20대와 해외에서는 반향이 있는 편이어서 실속은 챙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테이션'도 세부 장르는 다르지만 같은 취지로 제작된 작품이다.
월화극 중 시청률 5%대로 가장 호평받는 '라켓소년단'도 땅끝마을 해남의 한 학교를 배경으로 했으며, 스포츠 드라마지만 크게 갖출 게 많지 않은 배드민턴을 소재로 했다. 또 탕준상 등 신예들을 주연으로 내세워 신선함은 챙기면서도 '합리적인 출연료 지출'을 고려했다.
'미치지 않고서야'는 중견 배우인 정재영과 문소리를 내세워 지상파 주요 시청자층인 중장년을 공략하는 오피스극이다. 2군 전자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데다 이야기 흐름상으로도 큰 투자가 요구되는 작품은 아니지만, '연기 구멍'이 없는 캐스팅으로 경쟁하고 있다. 시청률은 3%대를 기록 중이다.
'부부의 세계' 이후 큰 히트작을 내놓지는 못한 JTBC 역시 현재 방영 중인 두 편의 미니시리즈가 모두 사실극이다. 정소민과 김지석을 내세운 로맨틱코미디인 수목극 '월간 집'과 송강-한소희 주연의 금요극 '알고 있지만,'이 그렇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3일 "그동안 굉장히 완성도 높고 자본이 많이 투자된 장르극들이 호평받았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영화로 가려던 자본이 확장 중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드라마로 넘어오면서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도 "(지상파가 사실극에 주력하는 것은) 제작비의 영향도 분명히 있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다"고 공감했다.
톱배우들이 많게는 회당 5억 원의 출연료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지상파가 사실극으로 회귀한 동기는 '가성비'였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트렌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전망도 있다.
공 평론가는 "고급 백화점이 잔뜩 들어서면 그 사이에서 레트로풍의 전통시장이 흥하듯 지상파의 최근 이런 트렌드는 그런 점에서 차별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며 "시청자 입장에서는 장르극에 대한 피곤함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평론가도 "최근 시대 정신이 권선징악과 정의 구현에서 공정한 경쟁으로 옮겨가는 모습인데, 드라마 역시 조금씩 옮아가는 것 같다.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경쟁,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삶을 꾸려나가는 과정을 다루는 작품이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