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가 ‘무더위 쉼터’라고요? 공무원들한테 한 번 와서 쉬어보라고 해주세요.”
17일 오후 2시 인천 남동구의 성리어린이공원. 이곳은 인천시가 지정한 야외 무더위 쉼터다. 공원에는 무더위 쉼터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무더울 땐 잠시 쉬어가세요’라며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공원에는 더위를 피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무더위 쉼터지만 제대로 된 그늘막이나 휴식처가 없는 탓이다. 그나마 있는 벤치에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시민들이 앉을 수 없게 펜스가 쳐 있다.
같은 시각 모래내시장역 근처에 있는 구월근린공원. 이곳 역시 시가 야외 무더위 쉼터로 지정했다. 이 공원 벤치에도 시민들의 출입을 막는 펜스가 있다. 폐쇄 안내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몇몇 노인들이 이를 무시한 채 앉아 장기를 두고 있다.

공원 안에는 평소 무더위 쉼터로 이용해온 구월2동 경로당이 있지만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상태. 이날 낮 최고 기온은 31도를 넘어섰고, 가만히 있어도 얼굴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실외에서는 사실상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공원에 있던 A(74)씨는 “경로당이 닫혀 근처에 앉아 쉬고 있는 것”이라며 “해가 어서 떨어져야 그나마 좀 낫다. 지금은 더워도 참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곳이 야외 무더위 쉼터인 것을 아느냐고 묻자 A씨는 “에어컨이 있는 곳이 쉼터지 여긴 그냥 공원이다. 이 날씨에 밖에서 쉬라고 여기를 쉼터로 지정했느냐. 공무원들이 와서 있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폭염대응체계를 본격 가동, 모두 663곳의 무더위 쉼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중 절반에 가까운 305곳은 강화·옹진군에 있는 경로당이다.
이를 뺀 나머지 358곳 가운데 에어컨이 있는 곳은 행정복지센터 129곳, 금융기관 62곳, 기타 8곳 등 199곳에 불과하다. 이마저 주말에는 문을 닫는다. 결국 휴일에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곳은 159곳의 야외 무더위 쉼터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은행도 지난해 93곳에서 62곳으로 줄었다. 게다가 지난 12일부터 수도권 지역 은행의 영업시간이 1시간 단축됐다. 반면 야외 무더위쉼터는 올해 13곳 더 늘었다.
시 관계자는 “당초 금융기관 쉼터를 105곳으로 정했지만 최근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해 은행에서 이를 축소시켰다”며 “실내 쉼터를 이용할 수 없는 주말에는 취약계층에 문자로 외출 자제를 부탁했다. 폭염 예방물품도 전달했고 전화로 안부를 묻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은 지난 10일을 시작으로 9일째 폭염주의보가 이어졌다.

[ 경기신문 / 인천 = 조경욱·이재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