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고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후련하고 시원했어요. 행복하단 느낌이 들었는데 좋아하는 곡을 후회 없이 연주할 수 있어 기뻤어요."
지난 3일(현지시간) 세계적인 권위의 이탈리아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재홍(22)은 4일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정을 넘어 오전 1시께 축하 파티 중이라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1949년 시작된 부소니 콩쿠르는 쉽게 1위를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3회 대회에선 '1위 없는 2위'만 나왔고, 2001년 격년제로 바뀐 이후 단 6명에게만 1위를 안겼다. 한국인 첫 1위 수상은 문지영(2015년)이다.
박재홍은 "결승 무대 협연을 마치고 나서는 딱히 뭔가 상을 받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아직도 우승이 안 믿긴다"며 "수상자 발표가 모두 끝나고 나서야 결과에 관해 실감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콩쿠르 참가자들의 수준이 너무 높아 누가 수상을 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며 "본선 라운드를 통과할 때마다 등수를 떠나 한 번 더 연주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하면서 음악을 즐기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박재홍은 이번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부소니 작품 최고 연주상과 실내악 최고 연주상 등 4개 부문 특별상도 받아 5관왕을 차지했다.
그에게 있어 부소니 콩쿠르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9년 첫 도전에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했지만, 현지에서 진행된 1차 관문에서 아쉽게 탈락한 바 있다.
박재홍은 "부소니 콩쿠르는 유명 연주자들이 거쳐 간 곳이고 역사가 있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며 "첫 도전에서 본선에서 탈락하고 난 뒤 2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결승 무대에서 에스토니아 출신 지휘자 아르보 볼머가 이끄는 하이든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40분가량 협연했다.
박재홍은 "라흐마니노프의 3번은 초등학교 5∼6학년 때 처음 듣자마자 반했던 작품"이라며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협주곡인데 인생의 모든 게 다 담긴 곡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콩쿠르 우승으로 피아니스트로서 더 성장할 좋은 기회를 얻긴 했지만, 앞으로의 연주에서 최상의 수준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며 "작곡가를 우선으로 하면서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임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콩쿠르 2위 수상자 김도현(27)도 전화 인터뷰에서 "결승까지 올라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상을 받게 돼 꿈만 같다"며 "매 단계 주어진 곡을 잘 연주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재홍이가 1위를 하고 제가 2위를 해서 아쉬운 건 전혀 없다. 이번 콩쿠르 덕분에 서로 알게 돼 좋았다"며 "결승에 진출한 3명 중에 한국인이 2명이라 의미가 있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김도현은 "본선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한국인 연주자들이 하나둘씩 탈락하면서 외로운 느낌도 있었다"면서도 "약 2주간 진행된 본선에서 최대한 재미있게 보내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나 러시아 등 유럽 연주자들이 결승에 올라가지 못해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그런 면에서 보면 심사위원들이 실력대로 공정하게 심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현대작품 최고 연주상도 받았다. 본선 진출자 33명 중 뽑힌 12명이 경쟁하는 '솔로 파이널'에서 연주한 프랑스 작곡가 패트릭 부르강의 곡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김도현은 "앞으로는 콩쿠르 참가보단 어떻게 하면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집중하고 싶다"며 "이왕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면 인생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한 내 모든 걸 다 바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