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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액션이 그려 낸 세상의 타락, 그 극악함에 대하여

㉝ SAS 특수부대 : 라이즈 오브 블랙 스완 - 망구스 마텐스

 

세상이 시궁창일 때, 생각하는 영화를 보는 것도 일종의 사치일 수 있다. 게다가 특정 집단이 온갖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억압하는 모습이 계속되면 저항의 심리 때문에 급 피곤해진다. 잘못된 권력의 우두머리를 잡아다가 흠씬 두들겨 주고 싶어진다. 그렇게 좀, 마음을 쉬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 그럴 때는 액션이다. 액션 영화가 주는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가 최고다. 영화 ‘SAS 특수부대 : 라이즈 오브 블랙 스완’이 극장보다 OTT 넷플릭스를 택했다는 것은 자신이 킬링타임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데 이 영화, 다분히 ‘사도마조히즘적 도스토예프스키풍’으로 구성돼 있다. 이 영화에 대해 평론이랍시고 리뷰를 쓰는 이유이다.

 

영화는 당연히 악당과 그에 맞서는 공정한 정부 병력(그런데 지금 세상에 그런 게 있기나 할까?)간의 전투 얘기를 후자의 시선으로 그린다. 아니 그러는 척한다. 상업 영화는 늘 선(善)이 이기는 해피 엔딩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중간중간 트랩을 심어 놓는다. 그래서 살짝 헷갈리게 만든다. 이제는 용병도 기업이다. 영화 속에서는 블랙 스완이라는 용병 조직이 기업형으로 움직인다. 이들은 얼마 전 러시아 조지아에서 작전을 벌였다. 그 와중에서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했다. 당장 국제사회의 뭇매를 맞는다.

 

 

이들의 체포를 위해 영국의 대 테러작전 부대 SAS가 나선다. 1차 작전에서 SAS는 블랙 스완의 리더격인 그레이스 루이스(루비 로즈)를 놓친다. 그녀는 곧 자신의 나머지 대원들과 함께 영국-프랑스간 해저 터널의 고속열차를 탈취하고 인질극을 벌인다. 그런데 때마침 이 열차 안에는 밀월여행을 떠나겠다며 SAS의 민완 요원 톰 버킹엄(샘 휴건)이 여자친구와 함께 탑승한 상태이다. 당연히 톰의 영웅적인 ‘나 홀로 전투’가 시작된다.

 

몇 가지 점에서 이 영화는 배경 설정에 ‘각을 줬다.’ 러시아 조지아 민간인 학살이 왜 벌어졌는가가 첫 번째이다. 이 시골 마을에 천연가스관이 통과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천연가스는 이래저래 말썽을 많이 일으킨다. 천연가스는 프래킹(fracking) 기법으로 채굴된다. 그런데 이 획기적인 방식은 안타깝게도 대지를 극도로 오염시키고 지진 위험을 배가시킨다. 그래서 천연가스 개발은 늘 지역사회에 극심한 논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또 하나,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이 문제다. 천연가스를 유통시키는 방식은 놀랍게도 대륙열차를 건설하는 것과 비슷하다. 발굴지에서 사용지까지 대형 가스관을 이어간다. 이 가스관 건설을 위해 다국적 천연가스 회사는 통과 지역을 통째로 사들이는 방식을 택한다. 그래서 보상 문제나 지역 보존 문제와 갈등을 일으킨다.

 

 

이 영화 ‘SAS 특수부대’는 바로 이 문제부터 시작된다. 러시아 조지아의 한 시골마을에 보상철거를 둘러싸고 대규모 시위와 저항이 이어진다. 다국적 기업은 여기에 용병을 투입한다. 몰아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학살로 이어졌고 다행히도 그 죽음의 과정은 휴대폰 카메라에 담겨 세상에 공개된다.

 

중요한 것은 용병의 우두머리 그레이스가 대륙 간 해저 횡단 터널의 중간지대를 점거하고 열차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이유이다. 그레이스는 자신들을 고용한 사실상의 주체가 SAS사령관 조지 클레멘트 장군(앤디 서키스)이었고, 그 장군 뒤에는 놀랍게도 영국 총리가 있는데 이 총리의 정치적 후견인이 다국적 천연가스 회사의 회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러시아 그루지아 학살은 블랙 스완이 아니라 SAS가 저지른 셈이다. 그리고는 오히려 입을 씻을 요량으로 그 일을 시킨 자들을 소탕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소탕의 주역이자 영웅 행세를 하는 남자는 버킹엄 가문의 후예이다. 왕족이다. 이것 역시 나름 상징하는 바가 작지 않다.

 

 

영화는 세상의 선과 악이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다. 또 다른 영화 ‘모가디슈’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한신성 주 모가디슈 한국 대사(김윤석)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살다 보니까 진실이 꼭 한 개가 아니더라고요.”

 

‘SAS 특수부대’는 진실이 여러 개임을 보여주려 나름 안간힘을 쓰는 영화다. 천연가스 개발 문제, 다국적 기업과 그들이 움직이는 친기업형 정부의 문제, 금권으로 구축된 정부조직의 오염도 문제, 어디서든 뻔뻔하게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피해 가는 지도자들의 문제, 국가 병력(검찰과 경찰을 포함해)의 폭력성 문제를 늘어놓는다.

 

나름 생각할 거리가 있는 액션 영화다. 단, 보여지는 얘기들을 좀 뒤집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영화 속 용병 블랙 스완과 우두머리 여자 그레이스는 나름 성전(聖戰)을 벌이고 있는 셈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원제는 ‘SAS: Red Notice’이다. 세상은 이미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당신은 어느 쪽 편인가. 편 갈라 먹기도 참으로 애매한 세상이다.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액션 영화에서조차 그려지는 세상의 타락이 실로 극악한 수준이다. 그래서 편을 정할 때가 되긴 했다. 잘 고르시기들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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