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교산은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에 자리, 수원시와 용인시, 의왕시를 거느리고 있는 어머니의 치마폭 같은 온화한 산이다. 그러면서도 수원시를 북에서 싸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수원시의 진산(鎭山)이다.
광교산은 주위에 큰 산이 없는 평야지대에 있어 산의 높이(582m)에 비해 우람한 모습이며 인근의 백운산과 어울려 규모가 상당하고 산자락이 넓다. 옛날 수원시민에게는 식수원 역할을 했으며 땔나무를 공급해준 고마운 산이다.
이산의 원래 이름은 광악산(光岳山)이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지금의 이름인 광교산(光敎山)으로 개칭됐다. 행궁에 머물던 왕건이 산위로 치솟는 빛을 보고 가르침을 받았다는데서 비롯됐다. 불교가 한창 성할 때에는 사찰이 90여개나 되어 신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이 사찰들은 임진왜란 때 거의 소실되어 창성사지등 사찰흔적만 남아 있다.
병자호란 때는 모든 전투에서 관군이 패했으나 김준용 장군이 이끄는 방어군이 모처럼 광교산에서 대승을 거두어 남한산성의 인조(仁祖)를 안정시켰다. 김 장군은 청태종의 부마 양고리와 장군 2명을 죽이고 청군의 항복을 받았다. 훗날 수원성을 축성한 영의정 채제공이 이를 전해 듣고 전승기념지라는 글을 청군이 항복한 암벽에 새겼다. 이는 경기도기념물 제38호로 지정돼 있다.
과거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에는 보국의 보루였고 평시에는 삶의 터전이었던 광교산이 이제는 주민의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교산의 울창한 숲은 경기남부지역의 허파역까지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한 광교산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훼손되고 보호하고 미화한다며 구조물을 멋대로 설치하여 결과적으로는 원모습을 파괴하고 있다. 광교산의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