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재임 중에 모두 13차례 화성에 행행(行幸)했다. 일국의 국왕이 특정한 지방에 열세차례나 다녀 갔다는 것은 흔한 일도 아니거니와 전례가 거의 없는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1795년(정조 19년) 음력 2월 9일의 행행과 1976년(정조 20년) 10월 16일의 화성 나들이는 각별한 것이었다. 1975년 행행은 정조의 생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부인이면서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蕙慶宮 洪氏)의 회갑연을 자신이 세운 화성에서 치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잔치는 화성 행궁 봉수당에서 치러졌다해서 봉수당 진찬(奉壽堂 進饌)이라고 불린다. 자궁(慈宮)의 회갑연을 궁궐 밖에서 치룬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정조는 이 행사를 치루기 위해 음력 2월 9일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서, 12일에 생부의 능침인 화산(花山·용주사 옆) 현륭원을 참배하고, 13일에 화성 행궁에서 성대한 회갑연을 치룬 뒤 16일 창덕궁으로 돌아갔다.
국왕이 7일 동안 궁성을 비운 일이나, 궁궐 밖에서 생모 회갑연을 베푼 것이나 하나 같이 파격이었다. 이듬 해인 1796년 10월 16일 행행은 정조 자신이 기획하고 지휘해 완공한 화성의 낙성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화성성역 낙성연’이라 불렀다. 원래 낙성연은 15일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옹주가 갑자기 두질(痘疾)을 앓게 되는 바람에 원자(元子)와 함께 이문원으로 거처를 옮기는 번거러움이 생겼고, 정조로서는 대통을 이을 원자를 보호할 책임도 있어서 날짜를 늦춘 것이다. 날짜 연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즉 13일 밤 우레가 쏟아지자 정조는 “우르렁 거리는 우레 소리가 겨울에 들려 왔으니 지금부터 3일 동안 반찬 수를 줄임으로써 반성하고 수양하는 도리를 다하겠다”고 언명했기 때문에 낙성연 음식을 줄이는 소동이 있었다. 낙성연은 낙남헌(洛南軒)에서 벌어졌는데 지금도 원형대로 남아 있다. 정조의 수원 애정이야말로 수원 사랑의 전범(典範)이라 할 것이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