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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난독일기)] 개

 

 

개는 골목에서 큰길로 걸어 나왔다. 다리는 짧고 몸통은 길쭉한 개였다. 목줄에 묶인 개는 주인의 바짓가랑이 주위를 요리조리 누비며 걸었다. 걷던 개가 처음 멈춰 선 곳은 전봇대 앞이었다. 개는 뒷발 하나를 전봇대에 걸치고 오줌을 갈겼다. 오줌은 벌려진 개의 뒷발 각도와 높이에 상응하는 자국을 전봇대에 남겼다. 전봇대에 새겨진 오줌 자국에서 김이 모락거렸다.

 

-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도 먹을 수 있게 존중하고.

 

다른 개는 반대편 인도에서 걸어왔다. 송아지인지 개인지 구분하기 힘든 개였다. 목줄에 묶인 개를 따라 주인은 아등바등 끌려 다녔다. 개가 주인을 끌고 나온 건지, 주인이 개를 끌고 나온 건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다른 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봇대에 오줌을 갈긴 개를 향해 다가왔다. 다가서는 다른 개를 향해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개가 짖어댔다.

 

- 일을 할 거면,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송아지인지 개인지 구분하기 힘든 개의 주인은 여전히 아등바등 끌려 다녔다. 끌려 다닐 때마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는데, 앞말과 뒷말이 연결되지 않고 뜬금없어서, 말의 속뜻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난 건지, 만나던 애인에게 딱지를 맞은 건지, 끌려 다니는 개 주인의 일진이 사나운 건 분명해 보였다.

 

- 이건, 부마항쟁인가요?

 

짖는 개를 주인이 바짓가랑이 뒤로 감췄다. 바짓가랑이 뒤에 숨어서도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개의 왈왈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송아지인지 개인지 구분하기 힘든 개의 다가섬도 멈추지 않았다. 아등바등 개에게 끌려오던 주인의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다. 뒤집어진 슬리퍼 밑바닥에 ‘임금님’ 상표가 선명했다. 다가서던 다른 개의 송곳니가 번뜩였다.

 

- 안 무니까 걱정 마. 내 장모도 10원 한 장 피해 준 적 없어.

 

인도를 걷던 행인들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슬리퍼가 벗겨진 주인의 말처럼 개는 사람을 물지 않았다. 물린 건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긴 개였다. 송아지인지 개인지 구분하기 힘든 개는 한 번 문 개를 놓아주지 않았다. 물린 개의 반격은 짧았고 비명은 길었다. 문 개도 물린 개도, 문 개의 주인도 물린 개의 주인도, 눈동자에 흰자위만 가득했다.

 

다음 날, SNS에 문 개의 주인이 ‘개 사과’ 사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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