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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재원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방법 찾아 헤매는 중"

올해 김수영문학상 수상…美프린스턴대서 물리학·미술 전공
"제가 쓴 시 읽힐 기회 주어져 감사…작가로서 무언가 만드는 일 계속 하고파"

 

 

제40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시인 최재원의 수상소감은 독특했다. 보통 작가의 수상소감이라면 상을 준 쪽과 독자에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 어떤 활동을 선보이겠다며 기대감을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최재원은 그 길에서 비켜있는 듯했다.

 

"미로를 탈출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미로 안에 있구나. 미로를 탈출하는 것이 아니라 헤매는 것 자체가 의미구나. 균열을 낼 수 있는 것들을 외면하고 부정하고 있었구나. 모든 것들이 언어였습니다. 말이 아닌 것들도 언어였습니다. 언어가 꼭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한 언어로 말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꼭 이해받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나는 헤맴의 궤적을 통해서도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김수영문학상' 서면 수상소감에서)

 

그의 소감을 읽으며 머릿속에 영상이 펼쳐지기도, 그림이 그려지기도 했으나 무언가 상이 선명하지 않았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작가에게서 직접 들어보고자 10일 전화를 걸었다.

 

-- 수상소감이 색다르다.

▲ 글을 연극적으로 쓰는 것을 좋아해서 시에도 그런 부분이 많다. 등장인물이 나오고, 그들의 독백이나 대화를 통해서 전개하는 형식, 꼭 시라고, 소설이라고, 희곡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수상소감도 약간 연기하듯이, 독백하듯이 무대에서 독백하듯이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고 독백하는 이를) 저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니다. 수상소감하고도 거리를 두는 거 같다. (독백하는 이를) 저와 동일시해서 말씀드리자면 상을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다. 제가 쓴 시가 읽힐 기회를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많은 사람이 그런 시를 읽을 기회가 흔치 않다.

 

1988년생인 그는 문인 경력이 길지 않다. 오히려 신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최재원은 2018년 미국 온라인 예술잡지인 'Hyperallegic'을 통해 미술 비평을 냈고, 시는 2019년 부산의 시전문 계간지 '사이펀'을 통해 처음 발표했다. 이때 쓴 시가 호평을 받으며 그해 겨울 신인상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나랑하고 시픈게 뭐에여?' 외 59편이다. 2018년 시작에 전념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는데, 이듬해 여름부터 써온 작품들이 그를 문학상 무대로 올려보냈다.

 

아쉽게도 수상작 '나랑하고 시픈게 뭐에여?'는 아직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민음사가 내달 출품작들을 묶어 펴내는 작품집에 그의 시 60편이 실릴 예정이다.

 

수상소감 못지않게 눈길을 끄는 건 이력이다.

 

민족사관고를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물리학과 시각예술을 공부했다. 고3 때 수학에 빠진 게 물리학을 선택한 계기였다. 대학에서 원하던 전공을 공부했으나 마음은 다른 곳을 향했다.

 

졸업 후 연구원으로 일했으나 더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대신 럿거스대 메이슨 그로스 예술학교에 진학해 미술로 한 발짝 더 나갔다.

 

-- 이색 경력이다. 물리학, 미술을 공부했으나 지금은 시를 쓰고 있다.

▲ 한국에서 (민사고를 다닐 때) 문과였다.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으나 고3 때 갑자기 물리랑 사랑에 빠져서 물리학과를 가게 됐다. 물리학의 언어는 수학이다. 수학은 오해가 없고, 기호도 바로바로 전달되고,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이해하는 '언어의 시차'가 없다.

 

대학에서는 천체물리학을 공부했는데, 그 패턴을 연구하면서 미학적으로 접근했던 거 같다.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그럼 면에서 매료가 됐다. 졸업하고서 연구도 해 봤는데, 너무 미적으로 접근하는 거 같아서, 그래서 아예 '미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해서 (대학원에서) 미술을 했다. 지금은 (미술) 작가는 아니지만, 그림을 평생 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인간의 언어'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헤매는 중인 거 같다.

 

-- 인간의 언어를 표현하는 방법이라 했는데, 지금은 그 방법이 시인가.

▲ 중요한 질문이다. 시를 쓸 때 시라고 생각하고 쓰지 않는다. 제가 생각하는 시적인 순간은, 시로 표현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 그걸 담기 위한 어떤 것(그릇)으로 생각한다. 다른 시인들도 그런 생각을 할 텐데, 어떤 정형화된 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장르적으로 말하자면 소설, 희곡도 아니나 시로 생각하고 쓴 것은 아니다.

 

그는 최근까지 시 쓰기 외에 한글로 된 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집중했다. 시인 이제니의 작품 '거실의 모든 것' 등을 번역하는 등 한영·영한 번역과 감수작업을 하고 있다.

 

문학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이름을 드러낸 최재원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첫사랑이었던 물리학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최근까지 공부했던 미술로 복귀할까. 지금의 모습처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방법을 찾아 헤맬까.

 

-- 앞으로 어떤 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지.

▲ 물리학을 다시 공부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그림은 항상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는 작가로, 무엇을 만드는 사람, 그게 그림이든 글이 됐든, 그 사이에 있는 것이든, (인간의 언어로)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최근에는 소설에 더 가까운 것을 쓰고 있는 거 같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단편소설 같은 시들이 많다.

 

(문학상 수상은 제 활동에서) 거의 처음으로 피드백을 받은 일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국문과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어서, 시를 보여줄 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니 피드백도 없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았었는데, 지금 제게는 모든 것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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