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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공덕을 쌓아야 만날 수 있는 아이들

 

초등학교는 담임교사가 반 아이들과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중, 고등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조례, 종례 시간과 특정 과목 수업 시간에만 만나는 것과 다르게 초등은 전담 과목 시간을 제외한 하루 대부분을 아이들과 한 공간에서 지낸다. 단순히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종일 소통을 해야 하기에 아이들과 담임교사의 합이 얼마나 잘 맞는지가 한 해 교육 농사의 관건이다.

 

담임교사가 반을 정하는 방식은 매년 2월 중순쯤 교사들의 학년 구성이 끝나면 반 아이들 명부를 앞에 놓고 랜덤으로 뽑는다. 특별한 이유로 먼저 명부를 확인하고 반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웬만하면 명부 봉투를 앞에 놓고 선택한다. 한 해의 명운이 반 아이들 명부 뽑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별하게 좋은 반, 나쁜 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와 잘 맞는 아이들이 뽑혔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명부 봉투를 열어보곤 한다.

 

작년까지는 딱히 뽑기 운이 좋거나 나빴던 적이 없다. 무난한 아이들이 무난하게 사고를 치는 와중에, 교실은 대체로 분란과 다툼의 도가니 속에서, 가끔은 행복이 넘실대는 분위기에서 간신히 간신히 굴러갔다. 우리 반이 사건 사고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도 있었지만 다른 교실도 다 비슷한 상황처럼 보였다. 유난히 힘들었던 어떤 해에는 친한 교사들끼리 모여서 불행 자랑 대회 같은 걸 열어서 마음을 풀기도 했었다.

 

올해는 전설로만 듣던 십 년 공덕을 쌓아야 만날 수 있다는 그런 아이들과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반 친구들을 매일 만나니까 어린이들의 멋짐이 익숙해서 무뎌졌다가 가끔 외부에서 강사 선생님이 한 번씩 오시면 다시금 깨닫는다. 강사님들은 수업 끝나기 전에 아이들에게 직접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시거나, 교실 문을 떠나기 전에 나에게 다가와서 우리반의 훌륭함을 재차 확인하신다. 수업에 대한 집중도가 높고, 질문에 대답을 잘하며, 중간중간 수업의 흐름을 끊는 말을 하는 학생이 없는 데다가, 수업의 결과물까지 훌륭한 그런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1년 동안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거의 없었다.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의 병행이었다는 걸 고려하더라도 6학년 교실에서 9달 동안 2번의 티격태격만 있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반을 위한 봉사를 하는데도 거리낌이 없이 나서는 아이들이 많다. 수업하는데 과제가 하기 싫다거나, 이걸 왜 해야 하냐는 등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아이가 한두 명쯤은 있을 법도 한데 그런 아이도 없다. 과제를 내면 묵묵히 해결하고 모르면 서로 알려주는 이상적인 교실의 모습이 매일 펼쳐진다.

 

아이들에게 너희가 얼마나 멋진지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지만, 당사자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8살 때부터 함께 지낸 친구들이 대체로 점잖고 배려가 몸에 배어있다는 건 아이들에게도 행운인 것 같다. 중학교에 가면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이 많을 텐데 조용조용하고 착한 우리 아이들이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2월이 되자 자연스럽게 내년을 떠올린다. 내년 언젠가 극도로 힘든 날 이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남은 한 달 동안 헤어지는 아쉬움을 담아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최대치로 표현해야겠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다시 이런 멋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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