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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34. 하남 교산동과 광주향교

 

향교는 한양 성균관과 더불어 지방의 중요한 교육기관이었다. 광주(廣州) 향교가 하남시에 있는 것은 옛날부터 조선 인조 때까지 광주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광주군 동부면과 서부면 그리고 중부면 일부가 1989년에 하남시로 독립했다. 향교가 있는 마을 지명이 교산(校山)이다.
 
원래 광주향교는 이성산성 옆 고개 위에 있었다. 하남의 원주민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기를 원래 향교 자리가 명당이라서 청송 심씨인 부원군 묫자리를 쓰기 위해 향교를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경종(景宗) 임금의 장인인 청은 부원군 심호(靑恩府院君 沈浩)가 별세했을 때 장성한 아들이 없어 임시로 매장했는데, 영조 1년(1725) 봄에 묘를 이장하는데 예장(禮葬)을 해주자는 논의가 있었고, 석물을 마련해 주고 병조에서 일꾼 75명을 지원하는 등 후한 예우가 있었다.

 

묘비문에도 광주 교동(校洞) 임좌(壬坐) 언덕에 자리잡았다고 했다. 부원군 묘는 1960년대에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로 다시 이장했다. 서부농협에서 서하남으로 넘어가는 고개 오른쪽 위에 향교가 있었고, 이 고개를 ‘향여고개(향교고개)’라고 부른다.

 


광주 향교에는 조선 4대 문장가 중 한 사람인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훈도로 재임했었고, 전국 향교 중에 드물게 1577년 무렵에 심의(沈義, 1475~?)가 지은 4언시와 7언시로 된 광주교생가요(廣州校生歌謠) 2편이 있다.

 

가사 내용 일부를 보면 "서울 남쪽의 한 마을에 삼광과 오악을 갖춘 상서로운 곳에 향교가 있고, 거기에 북극성과 견우성이 쏟아지며, 소년 소녀가 모여서 몸을 닦고 지혜를 쌓아가는…"이라고 했다.

 

 
광주 향교 유림(儒林)들은 일제 강점기에도 개인지도와 야학지도를 추진했다. 1920년 6월 27일 광주군 유림회는 광주 향교에서 임원회를 개최했는데, 임원 88명이 출석하고 심종협(沈鍾協) 군수와 16개 면장 모두가 모였는데, 이윤종씨는 ‘공자는 성지시(聖之時)’라는 주제로, 이정일(李廷一)씨는 ‘자신신민(自新新民)’이란 주제로 일장 강연한 후 강연소 설치 의안을 제출했다.

 

 
유림회에서 강연소를 2개 면 또는 3개 면에 하나씩 1곳을 두고 매월 1차씩 정기적으로 광주군 전체 청년을 망라해 강연을 행하고, 사숙(私塾)과 야학(夜學)을 지도 작성케 하며, 학교는 면마다 1개씩 둬 해당 면민 부담으로 하자 하니, 군수가 말하기를 "말하기가 어려움이 아니라 이행하기가 어려우니 이행할 방침을 강구함이 옳다"고 해서, 우선 강연소에서 사숙과 야학의 지도부터 하자고 하니 군수가 다시 유림을 권고해 부패한 옛 관습을 일소하고 타교(他敎)와 같이 발전을 도모함이 옳다고 하면서 간절한 어조로 설명했다.

 

이에 이윤종씨가 답사하기를 "우리 광주군 유림회는 혁신을 목적으로 일어났으니, 군수의 설명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노라"하고 "우리 유림은 가급적 혁신기관이 돼 전도에 보급하기를 각자 힘쓰는 게 좋겠다"함으로 만장일치로 박수를 치고 폐회했다.

 

6.25 한국전쟁 때에는 하남지역 학교가 파괴되고 중등교육기관이 없어 유림을 중심으로 1958년 광주 향교 명륜당을 임시 교사(校舍)로 사용하면서 ‘명륜학교’라 이름했다. 1959년에는 정규학교로 광주중학교 분교로 편입됐다가 다음 해에 남한중학교로 독립했다.

 

명륜당 기둥에는 당시 바람막이를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광주 향교가 있는 교산동과 그 주변 고골 일대는 문화유적이 즐비한데 신도시 건설이 예정돼 있어 사전 조사와 연구가 절실하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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