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40쪽 / 1만 4500원
소중한 것들은 모두 한 글자 단어이다. 빛, 물, 불, 땅, 흙, 말, 글··· 가장 중요한 ‘나’ 그리고 ‘너’까지. 우리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익숙해서 가끔은 잊고 살기도 한다.
희곡작가 고향갑의 첫 산문집이 출간됐다. 한 글자 제목으로 이루어진 총 69편의 글을 실었다. 연극과 뮤지컬 시나리오를 주로 써온 작가이지만, 꾸밈없이 담담하고 소소한 사유들에 에세이로서의 매력이 가득하다.
작가는 소중한 ‘한 글자’에 주목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도 작가의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것들을 먼저 관찰하고 표현했다. 이를테면 집, 꿈, 숨, 일…. 작가 자신, 가깝게는 주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엔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일상의 따뜻함이 묻어난다. 무심했던 곳곳을 어루만지는 온기가 느껴진다.
이름이 없어서 슬퍼하는 들꽃은 없습니다. 그것은 나와 당신의 착각입니다. 이름을 구걸할 여유가 들꽃에겐 없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씨앗을 열고 간신히 한철을 견뎌야 꽃대를 올립니다. 이름 없는 꽃은 있어도, 그냥 피는 꽃은 없습니다. (‘명名’ 중에서)
그 따뜻한 시선은 다시, 자본주의의 거대한 담벼락에 가려지고 그늘진 자리에 자주 머문다. 그릇공장, 조선소에서 일하며 노동야학에 참여했고 현재는 ‘글 노동자’로 살아가는 작가는 누구보다 노동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글을 통해 그늘 속에서 힘겹게 생명을 이어가는 것들, 삶을 꾸려가는 존재에 마음을 주고 공감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사건과 배경이 어떠하든 주인공은 늘 당신입니다. 문장에 등장하는 주인이 나였어도 달라질 건 없습니다. 나라는 주어를 빌려 썼을 뿐, 흑백 원고지를 관통하는 빨간 외투의 소녀는 당신입니다. 내 글의 주인공은 늘 당신입니다. 그대이고 귀하이고 연인이고 이웃이고 동료입니다. 아들이자 딸이고 아내이자 남편입니다. 내 글 속의 당신은, 밤새워 이력서를 쓰는 절박함이고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애틋함입니다. (‘책머리에’ 중에서)
작가의 한 글자에는 ‘나’도 있고 ‘너’도 있다. 책은 화려하지 않다. 묵묵히 걷고 있는 나의 일상이며, 고뇌하는 예술가의 하루이고, 버티는 노동자의 삶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각각의 ‘나’가 글의 주인공이다.
책은 ‘둘’을 가르지 않고 하나로 품고, ‘옆’모습만으로 충분한 마음을 말한다. 제목을 이루는 한 글자에 담긴, 한 글자와 함께 사는 ‘수만 글자’를 되새겨보게 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