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의 이름은 장미 /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56쪽 / 1만 5000원
은희경이 일곱 번째 소설집 ‘장미의 이름은 장미’로 돌아왔다. 6년 만에 펴낸 이번 소설집은 “‘타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인간관계를 둘러싼 근원적 문제를 작가 특유의 개성적이며 상큼한 어법으로 형상화했다”는 평으로 제29회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했다.
책은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장미의 이름은 장미’,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 ‘아가씨 유정도 하지’ 등 뉴욕-여행자 소설 4부작으로 구성됐다.
‘나’를 잊기 위해 훌쩍 떠난 낯선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동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고,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게 된 사람에게는 생각지 못했던 색다른 모습이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는 지금까지와 다른 삶을 살기위해 한국을 떠나온 ‘승아’가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 ‘민영’의 집에 머물며 생기는 갈등을 그렸다. 민영의 집은 승아가 꿈꾼 뉴욕과는 달리 낡고 오래된 모습에, 빌딩숲도 없는 동네다. 이런 상황에서도 승아는 민영을 위해 집안을 청소하고 주스를 만들지만 민영은 그저 불쾌한 기색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승아는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고민한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주인공은 이혼 후 뉴욕행을 택한 마흔여섯의 ‘나’와 그녀가 어학원에서 만난 세네갈 대학생 ‘마마두’이다. 마마두는 어학원에서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지만, ‘나’와 종종 짝을 이루게 돼 가까워진다. 어학원 프로그램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마마두와 함께 처음으로 학교 밖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날따라 마마두의 모습이 뭔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둘의 첫 나들이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의 ‘현주’는 극본 작업을 한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만난 ‘로언’의 영향으로 정기적으로 미국에 방문하고 있다. 로언의 친구들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이제는 로언과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현주는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하지만 로언과의 사이가 전과 같지 않고 코로나19로 인해 이방인을 대하는 태도가 날카로워진 지금, 모임으로 향하는 현주의 마음은 무겁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는 소설가인 ‘나’가 문학행사로 떠난 뉴욕에 어머니와 동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머니는 대체 왜 이곳에 오고 싶어한 걸까. 궁금하던 찰나, ‘나’는 우연히 어머니의 캐리어에서 오래된 항공우편을 발견한다. 어머니의 이름 ‘최유정’이 적힌 그 엽서는 육십 년 전쯤 미국 땅에서 한 청년이 보낸 것이다. 그 순간 언제나 냉정하고 독립적으로만 느껴졌던 어머니가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은희경은 작가의 말을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이 위축되고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으며 타인에게 공감하려고 애쓰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타인의 새로운 모습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여러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