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 제도의 축제’로 불린다. 올해 대한민국엔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라는 두 차례 축제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이 축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안타까운 것은 장애인 참정권 보장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오랜시간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이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매번 제자리인 이유에 대해 고민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글자 못 읽어 아무데나 도장 꾹…발달장애인도 뽑고픈 후보 있는데”
<계속>

발달장애인 김동호(28) 씨는 지난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고 난감했다.
오로지 숫자와 글로만 적힌 투표용지 때문이다. 뽑고 싶은 후보는 있었지만, 동호 씨는 숫자와 이름을 인지하기 어려워 아무나 찍을 수밖에 없었다.
2016년부터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보조인이 허용돼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대리투표’를 우려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2020년 투표보조 지침에서 ‘지적·발달장애인’을 제외하면서 도움을 못 받게 된 것이다.
동호 씨를 난감하게 한 것은 또 있다. 도장을 찍을 칸이 너무 좁았다.
“제가 손 떨림이 심해서 투표용지 칸 안에 (도장을) 제대로 찍지 못하겠더라고요. 게다가 기표소 안에서 오랜 시간 들어가 있다 보니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눈치가 보여, 긴장해서 더 떨리더라고요.”
동호 씨는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당시 자신이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 “그림투표용지를 원한다”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비장애인들보다 인지능력이 낮고, 글을 읽지 못하거나 읽어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투표용지에 그림 등을 추가해달라고 오랜시간 요구해왔다.
발달장애인 권리옹호단체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 중인 발달장애인 김대범 씨는 “글을 잘 읽을 줄 모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투표용지에 ▲정당 로고와 색깔 ▲후보자의 사진을 넣어달라는 것. 그러면 발달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문해력이 부족한 비장애인들도 후보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사진이 들어가면 도장을 찍을 기표란까지 자연스레 커져, 도장을 잘못 찍어 무효표가 되는 일도 줄어드는 1석 2조의 효과가 생긴다.
때문에 시각장애인들도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점자투표용지가 제공이 되는데, 도장을 찍어야 하는 기표란이 작아 힘들어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시각장애인 김인의 씨는 “제가 점자를 읽는 건 가능해서 (원하는 후보에게) 도장을 찍기는 하는데, 문제는 기표란 안에 잘 찍었는지를 알 수가 없다”면서 “그림투표로 용지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기표란도 넓어질 거고, 그럼 조금 더 투표를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선관위 대책 급히 내놨지만 “반쪽짜리”
하지만 선관위는 예산 부족과 공직선거법 미개정 등을 이유로 그림투표용지 도입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지난달 18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접근권 보장을 위해 그림투표용지 등의 편의를 제공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차별 구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로부터 8일 뒤인 지난달 26일 선관위는 장애인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이동지원차량·특수형 기표 용구·대형 기표대 등의 몇 가지 개선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림투표용지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반영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인단체들은 선관위의 절충안을 환영하면서도, 반쪽자리라고 지적했다.
김수원 피플퍼스트 활동가는 “예산도 예산이지만, 선관위는 그냥 의지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는 “대선까지 며칠 남지도 않았고, 당장 예산 공급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은 이해한다”면서도 “(그림투표용지, 읽기 쉬운 공보물 등) 안건에 대해 최소한 회의나 연구라도 진행해 줬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선거를 앞두고서야 장애인들의 분노를 잠시 수그러뜨리기 위해 급히 내놓는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개선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달라는 것이다.
[ 경기신문 = 김한별·이명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