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민주주의 제도의 축제’로 불린다. 올해 대한민국엔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라는 두 차례 축제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이 축제에서 소외된 국민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이다. 안타까운 것은 장애인 참정권 보장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오랜시간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이 문제가 매번 제자리걸음인 이유에 대해 고민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글자 못 읽어 아무데나 도장 꾹…발달장애인도 뽑고픈 후보 있는데”
② “다시 쓰세요, 다시” 윽박에 발달장애인 경인 씨는 첫 투표를 포기했다
③ ‘ㄴ임든’·‘대읙원’…점자 선거공보물 ‘오타’, 어찌 보라는 건가요
④ ‘장애인 참정권’ 보장할 법안은 답보…다시 거리로 나선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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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보조, 읽기 쉬운 공보물, 그림투표용지, 접근하기 용이한 투표소 등 장애인운동단체들이 10년 넘게 요구하고 있는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서는 지침(매뉴얼) 수준이 아닌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다는 게 활동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역시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책임을 국회로 돌리는 현실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에서도 (그림투표용지나 읽기 쉬운 공보물 등을) 검토는 하고 있는데, 입법이 돼야 진행이 가능한 부분들이 있다”면서 “선관위가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국회가 열릴 때마다 의견을 제출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법이 당장 이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법안 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여전히 계류 중이다.
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참정권을 보장받기 위한 내용들이 들어가 있다.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후보자 방송광고·연설방송에서 발달장애선거인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 사용 ▲책자형 선거공보를 발달장애선거인이 이해하게 쉽게 제작 ▲발달장애선거인이 기표하기 쉽게 하는 그림(사진) 투표용지 도입 ▲발달장애인선거인이 이해하기 쉬운 투표안내문 제공 ▲기표 시 발달장애선거인은 조력자가 투표보조 등이 담겼다.
아울러 현행 ‘공직선거법’은 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선거운동을 위한 방송광고 등에서 수어 또는 자막을 방영할 수 있다고 규정은 하고 있지만, 이는 임의규정이라 실효성이 낮다.
개정안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후보자 방송광고, 연설방송, 경력방송, 공개장소에서의 연설 및 대담, 후보자 대담 및 토론회 등 선거 관련 모든 방송에 한국수어와 자막을 의무로 제공하게 했다.
또한 현재 법에는 투표소 접근성 보장에 관한 내용 역시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봄에 치러진 4·7 재보궐선거 때도 투표소가 2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이용하기 어려운 장애인은 투표를 못 하고 돌아가야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정안에는 휠체어나 목발을 이용하는 신체장애인이 투표소가 설치된 건물에 승강기가 없어 투표를 못 하는 일이 없도록 접근성 관련 조항이 담겼다. 사전투표소나 투표소는 반드시 1층 또는 승강기 등 편의시설이 있는 곳에 설치하도록 했다.

이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까지만 해도 올해 3월 대통령 선거와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보다 나은 환경에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장애인들은 결국 또다시 분노하고 거리로 나섰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한국피플퍼스트·피플퍼스트서울센터·성동마을이신나는장애인야학으로 구성된 ‘장애인참정권 보장을 위한 대응팀’은 대선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발달장애인이 선거 관련 정보에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동등한 수준으로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할 책임이 정당들에게 있다”면서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처럼 엄연한 주권자인 발달장애인의 권리를 반드시 되찾을 때까지 전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응팀은 기자회견 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국민의당·정의당 등 4개 정당 당사 앞에서 발언을 이어간 뒤 각 정당 당직자에게 질의서를 전달했다. 이들은 오는 28일까지 각 정당으로부터 답변을 회신받아 이 내용을 20대 대선 사전투표날인 3월 4일 발표할 예정이다.
[ 경기신문 = 김한별·이명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