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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복수는 과거를 되살리지 못한다

 

영화와 예술은 공교롭게도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먹고 자란다. 영화는 밝은 시대보다는 어두운 시대에 더 잘 되는 경향이 있다. 아니 그보다는 어두운 상황에 대한 얘기를 더 잘하는 경향이 있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그랬다. 한국사회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이 보였지만 속으로는 이미 심하게 곪아 있고 또 그렇게 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줬다. 그건 신자유주의가 심화된 때문이고 한국 자본주의가 극도의 천민화, 양극화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은 문재인 이전 이미 9년 동안 진행돼 왔었다. '기생충’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우리 모두 이러다가 비극적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 드라마로 등극한 ‘오징어 게임’도 마찬가지다. 극중 인물인 1번 노인을 통해 이 드라마는 보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 다 죽어!”

 

영화가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은 그러나, 한 템포 정도 약간 늦는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3년이나 4년, 늦으면 5~6년 전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러니까 ‘기생충’은 박근혜 시절이 계속됐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가를 보여줬던 셈이다. 영화는 단순히 정치적 이슈나 정부의 주체가 누구였는가만을 문제삼지 않는다 점도 생각해야 한다. 한국사회의 여러 문제는 단지 정부가 어떤 인물들로 구성돼 있는 가로 표출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물적 토대의 문제가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에 따라 나타난다. 부동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심각하게 잘못 운용했다고 비판하면서 그 이슈가 이른바 정권교체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2030 세대의 지지를 이반시켰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부동산 문제는 이미 그 이전 정권,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더 구체적으로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체제에서 저질러진 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안다.

 

영화와 예술은 때문에, 현상보다는 해당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 그 심연을 추적해 들어가는 경향성을 보인다. ‘기생충’에서 시작해 ‘오징어 게임’과 ‘D.P.’ ‘지옥’ ‘우리 학교는 지금’과 같은 드라마는 한국 사회, 한국 자본주의가 언제부터, 그리고 얼마만큼, 어디까지 왜곡되고 변질됐는지, 무엇보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 것인 가를 보여주려 애쓴다. 그리하여 특정 정권의 교체보다는 정치 체제와 그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영화나 TV드라마 같은 대중 예술이 주려는 메시지는 그 같은 기저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대체로 영화나 드라마의 메시지를 잘못 보거나 보긴 봤어도 그 실체적 진실을 스스로 내면화해서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서툴러 하기 십상이다. 대중들은 대체로, 자주, 잘못 인도된다. 때문에 평론가들이나 기자, 통칭 언론은 대중예술이 사회를 반영하는 방식과 내용, 메시지를 올바르게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한국사회가 궁극적으로 잘못된 길로 빠지는 데에는 평론과 언론이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자(識者)들이 줄곧 언론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지금 극장에서는 '더 배트맨'이란 영화가 상영중이다. 흥행은 잘 안된다. 배트맨 시리즈가 다소 지겨워서일 수도 있다. 새로 배트맨 역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이란 배우가 한국에서 그다지 큰 인기를 모으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한국사회를 얘기하는 것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영화에서는 리들러(폴 다노)라는 이름의 한 미치광이가 개인적 복수심에 불탄 나머지 사회적 복수심에 전전긍긍하는 하층계급들을 선동해 고담 시의 시장 선거를 방해하고 시 전체를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뜨리게 한다. 배트맨 역시 다소 기이한 결핍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그는 어릴 때 눈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자신의 파워를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 혹은 범인들로 추정되는 거리의 깡패들, 조직범죄의 두목들, 예컨대 펭귄(콜린 파렐)등을 소탕하려 한다. 그런데 그 또한 개인적 복수심의 발로다. 사건은 시장과 검찰, 경찰이 모두 얽혀 있는 비리 문제로 번져 나간다. 배트맨은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복수는 과거를 되살리지 못한다”는 점을.

 

영화 '더 배트맨'이 한국사회를 겨냥해서 이야기를 만든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한 명의 미치광이가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선동하고 동원해 세상을 어지럽혔던 과거의 역사에 대해서, 그 보편성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제든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있고 지금 현재 반복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히틀러와 나치, 극우주의자들의 출현이다. 유럽사회와 미국사회, 동구권과 사회주의권에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복수극=정권교체 구호’도 마찬가지 모양새다. 알고 보면 이들의 복수에는 실체가 없다. 영화 ‘더 배트맨’은 현재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광기에 대해 경고음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거기에 한국도 포함돼 있다. 그걸 알아듣느냐 못 알아듣느냐는 전적으로 ‘관객=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몫이다. 내일(9일)이 20대 대통령 본 선거의 날이다. 걱정이 눈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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