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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촛불혁명의 설계도를 점검하다

 

- 백낙청의 깨우침

 

2022년 대선 이후 “오마이 TV”에 출연한 백낙청 선생의 발언이 주목되었다. 패인 분석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이재명이 촛불시민들과의 결합을 좀 더 일찍 더 강력히 했었다면....”

 

촛불시민과의 결합은 애초 민주당의 선거전략이 아니었다. 이른바 강성기조가 부각될 경우 중간층 포괄이 어렵다고 본 때문이었고 이는 선거과정에서 이재명의 타고난 전투력을 약화시키거나 거세하는 쪽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개혁 기조가 후퇴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거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담론은 끝내 제대로 나오지 못했고 2022년 대선의 정치는 왜소화되어버린 채 개별적 이해관계에 호소하는 ‘소확행’으로 마무리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백낙청은 토로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2021년 11월 6일, <개혁과전환 촛불행동연대>는 이재명 후보를 초청, 생중계 공개대담을 한 바 있었다. 대선후보로서는 공식 행보 제1차 일정이 된 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촛불과 만나는 일정에 대한 민주당 선대위 내부 반대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재명 자신의 적극적인 선택이 주효해 촛불시민들과의 만남이 그렇게 성사되었고 이후 마지막 유세는 촛불혁명의 역사적 공간인 청계광장에서 종결되었다. 선거 과정 전체를 보면 처음에는 느슨했다가 중후반기로 넘어가면서 촛불시민들과의 결합도는 강하고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낙청의 분석대로 강고한 결합의 수준은 아니었고 그 밀도는 선거 막바지에 급상승했으며 대선 이후 도리어 더 깊게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촛불혁명의 역사적 진화는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자의식의 발전이 기대되고 있으며 시민주체성의 현실적 토대가 보다 견고해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해보게 된다.

 

조금 더 준비가 필요했던 것 아닌가 하는 백낙청의 이재명에 대한 언급에 덧붙여 그의 미래를 기대해보자면, 그가 이 시대가 겪는 위기와 좌절을 체화해서 역사적 지도력을 갖춘다면 이번 대선의 의미는 사뭇 달라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전투력 복원과 역사적 전망이 하나가 되는 길이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백낙청의 “촛불혁명”에 대한 사유와 논지 전개, 그 인식은 이제 비로소 시작된 것은 아니다. 사실 오래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촛불혁명의 명제가 망각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에도 그에 대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고 이 인식은 한반도 차원의 나라 만들기와 세계체제 전환의 맥락까지 담고 있어 상당히 중요한 담론을 제기해왔던 것이다.

 

2021년 11월에 나온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는 바로 이러한 백낙청의 촛불혁명에 기반을 둔 역사인식이자 정치학이며 체제전환론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10년도 더 지난 글에서 최근의 사유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그 논지는 일관되어 있다. 특히 촛불혁명의 저력과 시민참여 운동이 분단체제를 혁파하는 동력으로 펼쳐져야 한다는 점은 지속적인 논의주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아프게 다가온 대목은 다음이다.

 

“촛불혁명이 청산해야 할 적폐가 얼마나 뿌리깊고 완강한 현실인지를 뼈저리게 인식하며 싸움에 임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는 “섣부른 낙관과 절망을 모두 경계”하자고 한다. 적폐구조의 완강한 토대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며 낙관과 비관의 무게를 가볍게 여긴 것도 아니지만 우리의 기대가 뜨거워질수록 자칫 현실인식에 착란이 생기기 쉽고 승패를 건 전략에 허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경각심을 가지고 되새기고 되새겨야 할 바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태도를 늘상 견지한다는 것은 어렵다. 난국에 처해 있을 때 필요해지는 것은 냉철한 분석만이 아니라 의지의 열도(熱度)를 높이는 일도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중과제론과 분단체제, 그리고 시민

 

 

이 책에서 백낙청이 언급하는 ‘근대의 이중과제’는 간략하게 대중적으로 설명하고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다. 다소 난이한 추상성을 가지고 있어서이다. 그 자신도 이를 인정하고 있는데 그런 추상성이 불가피한 까닭은 변화의 장기적 전망과 현실의 다급한 과제를 하나로 엮어내야 하는 작업에서 생기기도 하며 복잡한 현실을 명확한 개념으로 포착해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걸 염두에 두고 해석해보자면 ‘근대의 이중과제’는 그의 말대로 “근대에 ‘적응’하면서도 횡단을 이룩한다”는 건데 이때 논란이 되는 것은 “적응”의 문제이다. 근대의 모순을 알면 그대로 넘어서면 되는 것이지 “적응”의 과정 내지 단계를 포괄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근본적 질문이 그 안에 담기기 때문이다.

 

좀 더 말해보자면 우리에게 “근대”란 제국주의에 의해 이식된 자본주의체제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이 강요한 삶과 약탈적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가 나름으로 성취한 것도 만만치 않고 근대체제가 여러 욕망의 문제들을 해결한 방식과 경로가 간단히 무시되거나 폄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용어는 “적당한 성장”인데 그래도 이때 이 ‘적당한’이라는 말이 자칫 타협주의적 접근이 아닌가 하는 오해까지 낳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백낙청은 이 개념이 ‘적정수준(optimal point)’이라는 관점의 방편임을 설득하고 있는데 이 또한 어느 기준에서 그 수준을 정할 것인가 하는 논란이 이어진다.

 

그런데 그 기본적 의향은 근대의 성취가 가져온 물질적 토대의 중요성과 해방적 성격의 차원을 근본주의적으로만 질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되지 않는가, 라는 “변혁적 중도”의 관점과 연결된다. 이때의 “중도”란 대충 땜빵하는 식의 중간적 타협이 아니라 긴장된 균형으로 도달할 수 있는 변증법적 통합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이 논지를 다소 길게 강조하는 이유는 백낙청의 사유가 도발적이고 격정적이면서도 매우 절제되어 있고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성찰하는 능력에 탁월하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이다. 혁명의 열기를 존중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정밀하게 내리지 않으면 도리어 역기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륜에서 나오는 우려다.

 

주제를 좀 더 진전시켜보자면 우리가 세계체제의 힘 아래 구조적으로 강요당하고 일상이 되어버린 분단체제의 해체를 위한 의식, 전략을 그가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봐야 한다. 분단체제론은 백낙청의 오랜 지론으로 그것으로 제약되고 있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인식의 절실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이를 타파할 힘으로 촛불혁명의 과제와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촛불도 망각하고 있는 사회에서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은 사실 대중의 뇌리에서 거의 지워져 있다시피하다. 더군다나 이번 2022년 대선에서는 분단체제 해체와 통일에 대한 담론은 완벽하게 부재했다. 그는 평화를 강조하면서 통일에 대한 언급은 이제 시효가 지났다는 식의 논의를 비판한다. 그런 식의 논의는 결국 분단체제를 정당화하고 공고히 할 뿐이라고 경계한다.

 

이 과제는 당연히 간단하지 않으나 촛불혁명의 요구로 생겨난 “시민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면서 이렇게 3차원의 진행구조를 밝힌다.

 

“남북한 각자 내부에서 좀 더 완전한 시민권을 획득하려는 그날그날의 ‘개혁주의적 투쟁’과 이러한 확대된 시민권을 바탕으로 그것을 더욱 확장해주는 통일이라는 중기적 과제, 그리고 세계체제를 바꾸고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는 장기적인 노력 사이의 효과적인 상호연관을 성립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건은 어떤 형태의 국가를 만들 것인가이다. 이는 권력의 독점을 체제화한 국가주의에 따른 국가가 아니라 이를 해체하면서 시민주도성이 발현될 수 있는 국가를 말한다. 이는 대선국면에서 시민주도성과 시민지배의 정치학을 내세운 <개혁과전환 촛불행동연대>(조만간 <전환행동>으로 발전적 재편을 하게 됨)의 입장과 동일하다.

 

이 대목을 강조하는 까닭은 촛불혁명의 보다 구체적인 과제를 포착하고 이를 시민행동으로 발전시키는 노력을 <개혁과전환 촛불행동연대>가 매우 적극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후 지향할 전환설계의 그림 안에는 백낙청이 말한 한반도 문제와 기후정의를 비롯한 세계적 과제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백낙청의 담론과 같은 생각을 관철해내려는 시민적 실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 모두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적 지향점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백낙청이 경계하고 있는 “통일가능성을 제거해버리는 평화공존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전폭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우리의 헌법에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지닌다”고 되어 있다는 것 역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그는 자신의 지론인 “남북연합론”을 재차 강조한다. 중앙정부가 존재하는 연방제는 지금 단계의 현실로는 불가능하고 자칫 폭력적인 과정을 요구할 수 있는 반면에 연합은 상호 주체성을 근간으로 해서 이뤄지는 협력체제이자 통일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실은 통일담론을 빼버린 공존논리가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라 백낙청의 이 같은 문제제기는 대단히 중요해진다.

 

총괄해서 그의 논지를 정리하는 일은 버겁다. 적지 않은 논의를 매우 정밀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고(故) 김종철과 나눈 논의는 상호비판적 수준도 높거니와 사제지간(師弟之間)의 토론이라는 점에서 퇴계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우리의 공적 담론의 장에서 이만한 논지를 치밀하게 펼쳐내는 것이 일상이 된다면 어떤 사회가 생겨날지 기대가 된다. 물론 어려운 일이라는 점은 기본전제지만 노력해볼 만한 모델이 제시되었다.

 

다음의 문단은 총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길지만 인용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흔들린 지는 꽤 오래 되었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못 박는게 능사는 아니다. 약탈적 자본축적의 전면화와 이에 따른 빈부격차의 확대, 기후변화에서 실감되는 지구환경의 파멸적 변동, 탐(貪), 진(瞋), 치(癡)를 운행 원리로 삼는 사회체제 속에서 일어나는 인간성의 황폐화, 전대미문의 기술 발전에 대해 이를 맹종하든 제어하든 똑같이 기술주의적인 대응을 넘어서지 못하는 인간의 지혜와 사유능력의 고갈 등을 보면서 바야흐로 문명의 대전환을 절실히 요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거대한 인류 역사의 과제 앞에서는 촛불혁명조차 상대적으로 작은 사건이고 ‘낮은 단계의 남북연합’건설은 더욱이나 그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원이 클수록 실행은 ‘이소성대(以小成大)’로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에서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 옳지 않겠나.”

 

백낙청의 논지에서 아쉬움 하나와 보다 진전된 논의를 기대하고 싶은 바가 각기 있다. 하나는 2019년 서초 촛불항쟁의 의미가 그 무게와 중요도에 비해 다소 사소하게 취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만들어진 동력이 지금까지 촛불혁명의 시민적 과제를 주체적으로 감당하고 있다는 점을 그가 주목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마음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전적으로 찬성이다.

 

“아무리 엄격하고 정밀한 자본주의 분석도 그 자체로 충분하지 못하고 맑스가 강조한 혁명적 실천 의지가 이에 더해지더라도 ‘개벽’에 값하는 개인들의 마음공부를 내포하지 않으면 문명의 대전환을 이뤄내기 어렵다”는 주장은 귀하다.

 

우리의 정신사에서 동학은 물론이고, 서구에서는 정신영역의 최고점 오메가 포인트까지 진화해야 한다는 데이야르 드 샤르뎅을 떠올리게 되며 그 사유의 모험에서는 에른스트 블로흐가 말한 “생각한다는 것은 경계를 넘어서는 모험을 의미한다(Thinking means venturing beyond.)” 또한 동시에 기억하게 된다.

 

혁명은 결국 내 안에서부터 일어나야 진정한 혁명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의식과 윤리, 가치 혁명을 위한 시민교육은 그야말로 이 모든 전환설계도에서 핵심이다. 대선 이후 그토록 절절해진 우리의 심정을 담아 이제 제대로 해볼 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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