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지방선거가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여전히 광역·기초의원 선거구 획정 문제를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기초의원 3인 이상을 전제로 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요구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광역의원 정수 확대와 기초의원 소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맞서는 상황이다.
지난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여야에 선거구 획정 요청을 했지만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확정 시한을 넘겼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21일 공직선거법·지방선거구제개편 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논의에 들어갔지만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다음날 열리는 전체회의에서도 선거구 획정안이 확정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선거 때마다 반복돼 온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출마 후보자, 유권자들이라며 관련 법 재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 거대양당 ‘대립’…소수정당 “양당, 정치개혁 의지 보여야”
민주당은 다당제 정치개혁을 위해 광역의원 정수를 늘리는 대신 현행 ‘2명 이상 4명 이하’로 설정된 기초의원 정수를 ‘3명 또는 4명’으로 하는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했다.
기초의원 선거구 최소 정수를 3명으로 하고, 4명 이상으로 선출할 땐 ‘선거구 쪼개기’가 가능하도록 규정해놓은 조항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한 선거구에서 최소 3명의 기초의원을 뽑기 때문에 소수 군소정당들도 기초의회에 진입할 기회가 넓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에선 최소 정수가 2명 이상이기 때문에 민주당, 국민의힘을 제외한 군소정당들은 진입 장벽에 어려움이 있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부터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 대선에서 약속한 다당제 구축 실천을 위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윤 비대위원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선거구 획정 문제는 게임의 룰이어서 여야 합의 사안”이라면서도 “지방의회에서 2인 선거구를 없애는 방법을 최대한 모색하고 국회 제도 개선, 광역의회 선거구 획정 권한을 통해 관철하겠다”고 말했다.
이탄희 의원 등 민주당 의원 53명은 정개특위 소위원회가 열린 21일 “이번 대통령 선거로 다원주의 정치개혁이 왜 절실한지 여실히 증명됐다”며 “국민들이 정치적 양극화의 폐해를 체감하고 다원주의 정치체제와 다당제로의 ‘정치교체’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광역의원 정수를 늘리고 기초의원을 소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광역의원의 경우, 총 정수 조정 범위를 현행법상 14%에서 30%로 확대하고 인구 3만 명 이상 자치구·시·군의 시·도의원 정수를 최소 2명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선거구별 인구수 편차를 기존 4:1(60%)에서 3:1(50%)로 바꾸라는 판결을 내렸다. 즉 표의 등가성을 최대한 살리자는 취지다.
국회 정개특위 간사인 국민의힘 조해진 의원은 광역의원 정수를 30% 확대하고 인구 2만 명 이상 선거구에 최소 2명을 선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현행 시·도의원의 총 정수 조정 범위를 100분의 14에서 100분의 30으로 확대해 인구수 요인을 제외하고도 지역의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자는 의미로 보인다.
조 의원은 “광역의원 정수 조정과 선거구 획정은 특정 정당에 유불리가 있는 정파적 사안이 아니라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국회 차원에서 조속히 대안을 마련해서 처리해야 하는 공적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 지도부가 의제 합의도 되지 않은 기초의원 선거구제 문제를 들고 나와 광역의원 정수 및 선거구 문제와 연계시켜 처리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소수정당인 정의당은 거대양당의 주장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양당 합의로 법안 통과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합의를 통해 정치개혁 의지를 보여 달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배진교 원내대표는 “승자 독식형 소선거구제는 국민의 사표 심리를 부추겨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할뿐더러 국민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이 다수인 대다수 광역의회가 이번 선거구 획정에서 선거구 쪼개기 포기와 3인 이상 선거구 도입을 선언할 것을 요구한 바 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말로만 정치개혁이 아니라 다당제 연합정치에 대한 의지를 실천으로 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선거법 개정 전이라도 다수 의회 차지하는 지방 의회를 쪼개지 않겠다고 선언하도록 당 지도부가 적극 나서야 하고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진정성 믿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선거구 획정, 매 선거마다 ‘안개 속’…“결국 출마 후보자·유권자만 피해보는 것”
선거구 획정 지연 문제는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의 당락과 해당 지역 유권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후보자들이 정해진 선거구에서 정책 대결을 해야 하는데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선 선거운동 계획에 혼란이 올 수 있다.
유권자들 역시도 그만큼 후보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시간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여야 힘겨루기 정치에 따라 매번 반복돼 온 선거구 획정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회에서 관련 법 재정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매 선거에서 반복되는 선거구 획정 지연으로 예비 출마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덩달아 국민들까지도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려 피해를 보는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최종 결정이 이뤄지는 국회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 관련 법 제도의 재정비를 통해 시한 내에 의무적으로 선거구 획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구 획정 결정 기한은 있지만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매번 늦어지는 것”이라며 “선거구 관련해서 타협이 어려울 때 다수당들이 정족수로 밀어붙이기만 해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