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다나카가꾸에이(田中角榮)' 일본이 세계 2차대전(대동아전쟁)에서 패망한 이듬해인 1946년에 게이샤(藝者·기생)의 몸으로 금권(金權) 수상으로 일본 정계를 풍미한 다나카가꾸에이와 내연의 관계를 맺고, 47년동안 애환을 함께 했던 츠찌와코가 피로(披露)한 수기의 제목이다.
츠찌와코는 1927년 도쿄 후카가와(深川)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실직하자 요정 ‘가네마츠(金滿律)’의 양녀가 된다. 기생수업을 하는 동안 나이가 들었고, 19살 때인 1946년 29세인 다나카와 처음 만난다. 당시 다니카는 건축회사 ‘다나카토건공업’의 사장으로, 그 해 4월 전후 처음으로 실시된 총선에 고향 니이가다(新瀉)에서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신 때였다. 다니카는 가네마츠 단골로 자주 드나들었고, 자연스럽게 와꼬와 눈이 맞은 것이다. 1948년 탄광의혹사건으로 투옥된 다니카는 옥중 당선 되면서 정치인으로 변신한다. 1957년 기시(岸) 내각의 우정대신(郵政大臣)을 거쳐 마침내 1972년 총리대신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2년 뒤인 1974년 금맥사건, 1976년에는 록히트사건으로 체포되면서 다니카의 정치 역정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다니카는 정계를 은퇴한 후에도 무대 뒤의 실력자로 수상을 바꾸고, 장관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괴력을 발휘한다. 이른 바 다니카 금권정치의 진면목을 보여 준 한 시절이었다.
1985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1993년(75세) 저승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바깥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온 47년 동안의 두 사람만의 사랑은 이렇게 끝난다. 올해 77세의 와코는 수기 말미에서 “다니카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TV로 중계된 장례식장에 다나카의 피를 이어 받은 두 아들이 물끄러미 서있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가슴 아팠다”고 적고 있다.
혼외정사(婚外情事)가 차별 받고 비난 받는 것은 동서고금이 같다. 다만 우리나라와 일본이 다른 것은 배꼽 밑의 일은 공공연히 공론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