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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

 

이 모든 것이 ‘그 놈의’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도끼로 암살한 것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트로츠키의 주장처럼 사회주의는 영구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끊임없이 민주적 과정을 거쳐 일신하고 또 일신해야 했다. 그런데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추방하고 죽이면서까지 일국 사회주의 노선을 굳혔다. 일국 사회주의 노선은 사회주의의 이상 자체를 말살시키는 것이었다. 모든 해방운동이 이것 때문에 변질됐다. 인간의 얼굴을 해야 할 사회주의가 늑대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됐다. 스탈린은 일국 사회주의의 성과를 내기 위해 급격한 공업화 우선 정책을 폈고 그것을 위해서는 농산품 수출이 필요했는데 당시 소련으로서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그 방법으로 밖에는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농산품 수출을 위한 식량 조달은 곡창 지대인 우크라이나를 갈취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1932년에서 1933년 사이 스탈린의 이 ‘강도’ 행위로 우크라이나 인민 3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홀모도모르 사태다. 영화 '미스터 존'은 그 부분만을 뚝 떼어 내 사회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이다.

 

이러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다. 그 원한의 역사는 오래된 것이다. 당연히 친러파보다는 친서방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높은 나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키이우(키예프) 공국 군주 중 한 명이 세운 나라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시조 격 나라이다. 누가 뭐라 하든 러시아 사람들은 우크라이나를 자기들이 ‘보호(?)’해야 할 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크림반도가 그렇다. 돈바스 지역은 더 하다. 그러니 여기에 친서방파가 권력을 잡고 EU와 나토 가입을 서두르면 가만있을 리가 없다. 특히 나토 미사일의 우크라이나로의 동진(東進) 배치는 과거 1962년의 미-쿠바 미사일 사태와 판박이다. 당시 흐루시초프가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만들자 케네디 정부는 봉쇄 정책을 폈다. 핵전쟁의 위기로 치달았다. 그런데 흐루시초프가 이런 일을 한 데에는 미국이 터키에 대(對) 소련 미사일 기지를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문제는 연원을 따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어진다. 누구 말대로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기보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한 목소리로 대응해야 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핵전쟁의 가능성을 일축시켜야 한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대 러시아 전쟁의 전선을 확대시켜야 한다. 젤렌스키의 지지율이 90% 이상 나오는 것은 그 같은 열망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문제에 미온적인 것은 국내 문제가 꽤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발등의 불이 더 뜨겁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 후 보통은 그간의 정치적 이견(異見)으로 일었던 갈등은 ‘허니 문’ 기간에는 다소 잠잠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게 됐다. 청와대 이전 문제를 들고 나온 당선자 때문에 한국사회는 급격한 안보 논리에 휩싸였다. 그런 와중에 북한은 ICBM을 시험 발사했다. 다른 미사일도 아닌 ICBM을. 가뜩이나 당선자와 국민의 힘의 국방 정책 우선순위가 선제타격론에 힘이 실려 있는 상황이다. 한반도를 가까스로 평화 구역을 만들고자 했던 지난 5년 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셈이다. 

 

한국 사람들 중 90% 이상이 평소에 한반도에서는 이제 6·25 같은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일상의 감각으로 살아간다. 휴전선 인접 도시인 파주에는 GTX과 들어오고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쇼핑 몰이 들어서려는 중이다.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맞기는 맞는 말이다. 6.25 전쟁 같은 재래식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핵 발사 하나 만으로 한반도 전체는 쑥대밭이 될 것이다. 전쟁의 공포가 이렇게 전격적으로 다시 일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했던 일이 아니다.

 

자 그러니 어떻게 보면 우크라이나 문제가 더 이상 먼 나라 얘기가 아니게 됐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한반도이며 한국의 정치 문제는 우크라이나에 맞닿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해결하면 한국의 전쟁 위협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두 나라는 동전의 앞뒷면이며 손바닥의 안과 밖이다. 전쟁 중단의 방법론은 세계 어느 지역에서 쓰이든 그 보편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한국의 많은 사람들도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외곽을 때리고, 그렇게 우회로를 거쳐, 한반도의 문제, 국내 정치의 본질의 문제에 접근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사실 먼 나라가 아니다. '제5원소', '레지던트 이블'의 밀라 요보비치가 우크라이나 키이우 태생이다. 밀라 쿠니스('블랙 스완')도 그렇다. 007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에 나와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됐으며 최근 우리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에 유현석과 같이 출연하는 올가 쿠릴렌코는 우크라이나 베르단스크 출신이다.

 

할리우드 감독 겸 배우인 리브 슈라이버가 연출한 2005년 영화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를 보면 광활한 해바라기 밭이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아름다운 곳이다.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나오는 1970년도 영화 '해바라기'에서와 같은 아름다운 전원은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그게 곧 우리 얘기가 될지 모른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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