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마담의 원조는 아무래도 조선조(祖) 제8대 예종을 수렴청정했던 정희왕후다. 예종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친정을 못하게 하고 섭정을 한 정희왕후가 막강한 권세를 휘두른 것이다. 얼굴마담이 얼굴마담이 아니라 실세로 군림한 것이다.
또한 예종이후 등극한 성종도 13세의 어린 나이여서 정희왕후는 2대에 걸쳐 8년여 동안 국권을 쥐락펴락했다. 또 드라마의 소재로 유명한 문정왕후는 8년여 동안을 섭정하면서 을사사화 등으로 많은 정적을 죽이는 등 악정을 폈다. 그리고 가깝게는 고종때 흥선대원군이 섭정, 국운쇠망의 길을 재촉했다.
주객이 뒤바뀐 얼굴마담들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왕권에 밀려 실권, 무대 뒤로 사라진 것은 역사의 순리이다.
제3공화국이후 도입된 국무총리는 말 그대로 악역이나 맞는 실권 없는 얼굴마담이었다. 최장수 총리였던 정일권, 김종필 등이 대표적으로 오너한테 숨소리 한번 내지 못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총리들도 헌법에서 주어진 권한 한번 챙겨보지 못하고 물러갔다. 총리선정부터 정치력, 행정력보다는 오너의 단점보완이나 민심안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다. 국가의 이슈가 있거나 민심이 흉흉할 때면 제일 먼저 고려되는 것이 총리경질이었다. 말하자면 총리를 국면 반전용 소모품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대선 전리품으로 총리직을 공동집권이라는 이름으로 차지했던 김종필씨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김영삼정부시절 자신의 목소리를 낸 이회창씨는 소신을 펴지 못한 채 경질됐다. 얼굴마담의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요즈음 박근혜 한나라 대표가 얼굴마담론을 들고 나와 화제다. 자신은 얼굴마담이 아니라고 반대파에 일갈한 것이다. 정치판에서의 오너는 국민의 지지에서 나오는 것인데 두고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