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의 최전선 / 김기정 지음 / 오래 / 236쪽 / 1만 5000원
‘새벽은 모든 시간의 시작이며 모든 생각들의 최전선이다. 생각들은 이 시점에서 가장 치열해진다. 기억을 생각 속에 각인하는 일도, 흐트러진 생각들을 구분하고 정리하여 정치(整置)된 사유(思惟)로 전환하는 일도 모두 새벽에게 주어진 일과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세월에 따라 자연스레 새벽잠이 옅어진,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된 새벽들. 그 시간들 앞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만한 것이 있을까.
책은 모두가 잠든 새벽, 홀로 깨어 있는 저자가 기억과 생각을 정돈하며 써내려간 28편의 산문을 엮었다.
저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으로 활동하는 정치학자로, 삶의 대부분을 연구와 전략 구상에 몰두했다. 그만큼 국제정치 현장과 학문 공동체에 기억과 생각이 주로 머물렀다.
그가 정치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1장 ‘사유(思惟)의 정치(整置)’에 담았다. 2장 ‘공부의 기억’에는 학문의 길에서 만난 인연과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공공외교 현장에서의 감상과 “그렇지만 우리라도 이런 짓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라며 귀국 비행기 안에서 마음을 다잡던 기억, 정치학을 전공하고 가르쳤지만 역사학에 대한 애정을 차마 놓을 수 없어 사이가 벌어진 두 학문의 재회를 바라는 은근한 마음을 저자는 책으로 전한다.
1905년 미국과 일본이 합의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둘러싼 논쟁에 대한 해설, 1940년대 말 미국의 한반도 철수 계획과 6·25전쟁 개입 결정의 상관관계 그리고 이로 인한 한국인의 트라우마 분석, 현재의 미중 경쟁을 ‘신냉전’으로 규정하려는 정치적 해석에 대한 불편함을 1938년의 뮌헨협정과 연결한 이야기 등 한반도 외교사의 주요 장면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딱딱한 정치를 벗어나 저자가 평소 관심을 둔 분야에서 소재를 끌어온 글도 눈에 띈다. 문학 ‘소설 『파친코』와 경계 위의 꽃’, ‘3·1 독립선언서의 새로운 감상(2) : 1919년의 봄과 이상화, 그리고 2018’과 문화현상 ‘정치학 한류의 즐거운 상상’, ‘영화 ‘기생충’, 일본어 제목은 누가 붙였을까?’ 등이다.
‘정치학 공부는 직업이 되었다. 좋아해서가 아니라 잘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이라서 직업이 되었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하기 어렵다. 좋아하는 일을 옆에 두고 싶기는 했다. 대학 입학 후 문학회 동아리에 가입했고 신춘문예 응모 시절이 되면 가슴이 늘 콩콩 뛰었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중에서)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어우러져 독자에게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기억을 재료 삼아 직조한 생각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넓게, 그리고 오래 퍼져나가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치열한 기억은 생각이 되고, 이는 공부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기꺼이 머릿속을 열어 그 안에 세상에 관한 생각을 채우겠다는 저자의 결심과도 맞닿아 있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