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 평범한 한 선비가 있었다. 이 선비는 마누라와 소실을 거닐고 살았는데 아침이면 일보러 나가는 양 어김없이 나갔다가는 해가 지면 들어왔다.
들어올 때마다 배가 부르고 거나하게 취해 있었으며 한 손에는 처자식에게 줄 음식물이 들려 있었다. 이 선비는 기분 좋게 들어 와서는 밖에서 고관대작 또는 유명인사들을 만나 대접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큰 부인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정도 대접을 받으면 많은 사람이 찾아오기라도 할 터인데 전혀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큰 부인은 작은 부인한테 아무래도 남편의 거동이 이상하니 뒤를 캐 보겠다고 말하고 남편을 미행했다.
이 선비는 저자거리로 나가더니 기웃거리며 분주히 돌아 다녔다. 그러나 아무도 이 선비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접근하여 말을 붙여도 제대로 대꾸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본 부인은 남편을 측은하게까지 생각했다.
반나절을 쏘다닌 끝에 점심때가 되었으나 점심 먹자는 사람도 없었으며 주머니가 비어서 매식도 힘든 처지였다. 이 선비는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이 부지런히 성밖으로 나가서는 공동묘지로 갔다. 장례를 치루는 곳으로 가서 제사음식을 청해 먹고 모자랐는지 다른 장례집에 가서 또 얻어먹었다.
이 모습을 본 부인은 집으로 돌아와서 작은 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대성통곡했다. 그렇게도 근엄하게 보이고 존경스럽기까지 한 남편이 장례음식이나 얻어먹고 다닐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이 선비는 영문도 모른 채 귀가해서는 또 거드름을 폈다.
맹자(孟子)는 이 같은 고사를 전하며 “부귀영달을 구하는데 있어 아내와 첩이 부끄러워 울지 않을 정도로 떳떳할 자가 얼마나 있겠는가”고 했다. 현대에 사는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으나 걸레같은 삶의 수치를 모르는 것이 문제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