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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판결”, 그 내면의 문자들

 

-한승헌, 이어령 그리고 남정현

 

얼마 전에 돌아가신 두 분의 고인(故人), 한승헌 변호사와 이어령 선생은 동갑내기 1934년생이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을 하나로 엮어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활동영역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과 한 살 터울이자 조금 앞서서 고인이 된 작가 남정현 선생(1933년생)의 작품 『분지(糞地)』는 이 세 사람을 한 자리에 모은다. 1965년, 법정에서였는데 셋 다 30대 초반의 젊은 시절이었다.

 

 

『분지』는 홍길동의 10대손 홍만수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우리와 미국의 관계를 우화적으로 묘사한 작품인데 반미(反美), 북한 동조 혐의로 반공법 위반 재판을 받게 된다. 이 시기 박정희 정권은 한일협정을 맺는 과정에서 대일 굴욕외교라는 지탄과 함께 국민적 저항에 처해 있었다. 그런 터에 미국에 대한 비판적 소설이 나왔으니 그냥 둘리가 없었다. 공안통치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제목은 ‘똥 덩어리가 넘치는 땅’이라는 뜻이고 그건 당대의 한국 현실을 비유한 것이 틀림없으니 말이다. 뭔가 국면을 바꿀 건수가 없을까 싶은 때에 잘 걸려든 것이다. 한일협정반대의 선두에 서 있는 지식인, 문인들에 대한 탄압의 구실 하나가 생긴 셈이었다.

 

 

『분지』의 작중 인물 홍만수의 아버지는 독립투사로 해방이 되었으나 소식이 없고 어머니는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에게 강간당해 미쳐 죽고 만수는 한국전쟁 후 제대해서 가난하고 암담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여동생 분이가 미군상사 스피드와 동거생활을 하면서 매일 폭행을 당하고 있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느 날 스피드의 부인이 미국에서 오자 그녀를 어디론가 데려가 몸을 보여달라며 더듬는 일이 발생하고 이에 펜타곤 당국이 만수가 숨어 있는 향미산을 포위, 미사일 폭격을 준비한다. 다소 황당한 사태 전개가 담긴 이런 내용이 만수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되어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북의 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에 그대로 게재되는 바람에 사태는 더 커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은 한승헌 변호사가 쓴 『재판으로 본 한국 현대사』에 실린 사건 관련 기록으로, 변호인 측 증인으로 나온 이어령의 답변 일부다.

 

- 소설은 반미적인가?

“이 소설은 우화적 수법으로 쓴 것으로 반미도 친미도 아니다.”

- 현실 자체를 그린 것은 아니란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이어령의 답이 걸작이다.

 

“그렇다. 이 작품에서 한국여성과 미군의 관계는 미국문화가 한국문화와 접촉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작가 남정현을 구해내려는 묘한 문학비평이다. 정치적 해석을 문화적 해석으로 뒤바꾼 것이다. 변호인은 이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작품이 북한에 동조했다고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러자 이어령은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남정현이 가리키는 달은 주체적인 한국문화이며 ‘어머니’로 상징되는 조국이다.” 상대가 치고 들어갈 틈이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그 다음 대답이 또한 재치가 넘치는 이어령답다.

 

“장미의 뿌리는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서 있는 것이므로, 설령 어느 신사가 애용하는 파이프를 만드는데 쓰였다고 해서 장미뿌리는 파이프를 위해서 자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거침없는 그의 답변은 검사의 반대신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는데 증인은 용공적이라고 보지 않았는가?

“나는 놀라지 않았다.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신문기사가 아니다.”

 

- 분지(糞地), 분지(憤志) 그리고 분지(焚紙)

 

한승헌 또한 어디 평범한 변론을 했겠는가. 그는 “반공법을 확대적용해서 그 법이 지켜내겠다는 기본권을 도리어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으니 자가당착에 본말전도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한 작가의 ‘분지(憤志)’를 곡해한 ‘분지(焚紙)’의 위험이 있다.”고 반박한다. 평소 유머가 넘치는 한승헌의 해학적 논리가 펼쳐진 것이다.

 

제목 『분지(糞地)』와 발음만 같은 단어를 가지고 앞에서는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분노(憤怒)가 담긴 의지(意志)인 분지(憤志), 뒤에서는 책을  태워버리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생각나게 하는 불태울 분(焚)과 종이 지(紙), 분지(焚紙)를 썼으니 기발했다.

 

변론이 반공법의 틀에 묶일 계급의식과 반미에 대한 공격을 받아치는 것에 주안점이 있었다면 이 당시 조선일보의 사설은 지금의 조선일보를 생각해볼 때 놀랍기조차 하다. 이 즈음은 박정희 정권이 작품 『불꽃』의 작가 선우희 조선일보 편집국장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리영희 기자를 한일회담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속시켜버린 상황이었다. 선우휘는 우파적 보수주의를 견지했으나 나름 민주주의의 원리적 논조를 수용했던 인물이었다. 그와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던 조선일보는 이렇게 주장했다.

 

“대한민국에서 계급의식이 법적으로 배척될 근거는 전혀 없으며 반미감정을 어째서 불법으로 단속할 수 있는가? 북이 반미한다고 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반미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논법이 선다면, 지금 한창 반미노선을 걷고 있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을 추켜 올려도 북에 대한 동조라는 삼단논법이 성립되지 않는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스스로 창살없는 감옥으로 만드는 우(愚)만은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되겠기에 감히 일언(一言)하는 바이다.”

 

대단한 용기다. 4·19 혁명의 기개가 남아 있던 시기였고 5·16 군사쿠데타의 정당성이 수시로 도전받았던 때였기도 했지만 계급과 반미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사안이라 지금도 이런 논조가 가능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만한 투지와 논리, 뱃장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통합진보당 해산과 김이수 판사

 

 

2014년 통합진보당은 사라지고 만다. 헌재의 판결로 내려진 결정이었다. 아홉 명의 헌재 판사 가운데 8명 해산 찬성, 1명의 반대가 있었다. 해산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통합진보당의 활동은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고 이러한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이 논리에는 “종북(從北)”이라는 혐의가 주도했다. 북과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만든 정당이니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당시 단 한명의 소수 의견자 김이수 판사는 이렇게 논지를 폈다.

 

“북한을 추종하기 때문에 유사성이 나타났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이다. 정부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정신과 시각이 북한과의 연계나 북한에 대한 동조라는 막연한 혐의로 좌절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점만으로 북한 추종성이 곧바로 증명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비슷한 것과 똑같은 것은 분명 다르다. 이 차이를 명확하고 엄중하게 분별해내는 곳이 법정이라고 한다면, 그걸 못할 경우 판단의 혼란은 자명해진다. 그는 또 이렇게 덧붙인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까지 통합진보당이 한국사회에 제시했던 여러 진보적 정책들이 우리 사회를 변화하게 만든 부분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고, 이는 통합진보당에 소속된 10만에 가까운 당원들이 당원이 되고자 결심하도록 만든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을 해산해버린다면 “이 노선과 활동을 지지한 당원들의 정치적 뜻을 왜곡하고 그들을 위헌정당의 일원으로 낙인찍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짚었다. 헌재의 해산판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입증되지 못한 사안을 죄로 만들어 처벌”한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김이수 판사의 논지는 바로 이 지점에 집중되어 있었다. 유죄를 추정해서 판결을 내리는 순간, 법은 법복을 입은 폭력이 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내용들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저 몇 줄의 기사로 사람들은 누군가의 생사가 걸려 있거나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 일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판결, 그 문자에 담겨 있는 내면의 진실 또는 피와 눈물이 전혀 읽히지 못한다.

 

이병주와 『관부연락선』 그리고 의병대장의 재판

 

 

소설 『산하』의 말미에서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月光)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작가 이병주는 그의 작품 『관부연락선』에서 작중 인물 유태림의 수기(手記)를 전하는 가운데 어느 일본 노인이 지니고 있던 의병대장 이인영의 재판기록을 내놓는다. 명치 42년, 그러니까 1909년의 일로 폭도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를 가진 “폭도거괴(暴徒巨魁) 이인영에 대한 무라이(村井) 헌병대위의 문답”이라는 형식의 문서다. 긴 문답의 내용을 다 읽고 나서 작중의 화자는 이렇게 적는다.

 

“중학교의 역사책에 보면 의병을 기록한 부분은 두세 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두세 줄의 행간에 수만 명의 고통과 임리(臨履)한 피가 응결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의병대장 이인영의 기록을 읽으며 역사의 무게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여기서 ‘임리’란 고통으로 울며 흐르고 밟혔다는 뜻이다. 이런 아픔은 이병주에게 낯설지 않다.

 

그는 1960년 12월, 월간 <새벽>지에 “조국(祖國)의 부재(不在)”라는 논설을 썼다가 5.16 군사쿠데타 세력에게 조국을 부인했다는 죄명으로 체포되어 10년 징역형을 언도받게 된다. 실제로는 2년 7개월의 옥살이를 하고 풀려났는데 훗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당시 ‘조국이 없다. 산하가 있을 뿐이다’라고 한 말은 우리가 애착할 수 있는 조국을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쓴 말인데, 그걸 가지고 조국이 없다며 조국을 부정했으니 반국가적이라고 한 거야.” 이런 기막힌 심사가 5·16 군사쿠데타를 비판한 『그해 5월』, 해방정국을 다룬 『산하』, 구한말의 정세를 짚은 『바람과 구름, 그리고 비(碑)』, 빨치산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 『지리산』등으로 나타난다.

 

한 두 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인간의 삶, 역사의 노정(路程)을 파고 든 것이다. 태양이든 달빛이든 무엇으로 비춘다해도 인간의 삶이란 그 누구의 것이건 간에  사연의 바다는 깊고 넓다. 그가 젊은 시절 와세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있을 때 책상이 있는 벽에 “나폴레옹 앞엔 알프스가 있고, 내 앞에는 발자크가 있다”고 써붙였다고 하는데 역사소설의 기록성과 그 기록에 담긴 실존 인물의 삶, 역사의 치열함을 그는 온통 움켜잡고 작품을 써나간 것이다.

 

하여 그는 “역사는 산맥을 기록하고 나의 문학은 골짜기를 기록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삶의 촘촘한 사정들을 문학의 본령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자유 자체다. “학자와 장군이 같은 철학을 가져야 할 때 거기에 전체주의 국가가 나타난다.” 이걸 법정의 판결 문제와 이어 보자면  어떤 논의가 될까?

 

 

우리 현실에서  공정하지 못한 판결로 그 삶 자체의 유죄가 확정되고 그것이 그의 평생을 낙인찍는 경우가 적지 않다. 1975년 4월 9일 인혁당 재판과 즉각적인 사형집행은 두고두고 ‘사법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의 폭력을 역사로 남겼다. 무게와 강도(强度)만 다르지 법정의 폭력은 이제 과연 사라진 것일까?

 

권세가 있어서 판결의 그물망을 벗어난 이들, 아니면 판결 근처에도 가지 않는 특권을 누리는 자들은 세상이 발견하기 어려운 골짜기 구석진 곳에 숨어 있다. 반면에 언론들은 누군가 표적이 생기면 법정보다 더 큰 권력으로 판결을 내리고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한다. 병풍에 그린 호랑이가 생사람을 잡고 담배 파이프로 만들어진 장미나무 뿌리 때문에 족쇄가 채워지기도 한다.

 

대통령 선거로 정치검찰의 나라가 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법정의는 더욱 절박해졌다. 이런 형편에서  가령 판결문의 공개는 민주시민들의 기본권이 되어야 옳다. 그 문자 행간의 내면을 함께 읽고 토론할 자유는 우리가 지나는 어두운 계곡의 지도와 나침반이다. 사법정의가 무너진 곳은 분지(糞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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