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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스승의 날보다 감정노동자 보호법

 

얼마 전에는 스승의 날이었다. 매년 이맘때쯤이 되면 몇몇 아이들이 편지를 써서 책상 위에 두거나 수줍게 전해준다. 편지의 내용은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겠다’로 압축할 수 있다. 흔한 말들이지만 평소에 데면데면하게 인사하던 사춘기 아이들이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아낌없이 써 놓은 걸 보면 괜히 마음이 찡해온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스승의 날이었지만, 최근에는 형식적으로 이름만 남아있는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교사가 나서서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사들이 쉴 수 있는 날도 아니기에 현실에 맞게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 기념 행사는커녕 교사들이 디지털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감정노동에 못 이겨 정신과나 상담을 찾는 현실에 맞는 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콜센터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법이 시행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있을 정도로 악성 민원인들이 활개를 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인다. 다만, 법이 생겼으므로 악성 민원인 등장 시 대응할 수 있는 메뉴얼이 생겨서 이전처럼 고객이 전화를 끊기 전까지 끝없이 폭언을 들으며 견뎌야 하는 건 아니다. 없으니만 못한 법일지라도 보호 장치가 한 꺼풀 생긴 셈이다.

 

교사가 겪는 민원 상황이 콜센터 직원들이 만나는 악성 민원인과 견주어봐도 뒤처지지 않는다. 주변 학교를 둘러보면 악성 민원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못 이겨서 정신과를 찾은 교사들이 꽤 많다. 상황을 견디다 못해 교직을 떠난 친구들도 존재한다. 교사가 만나는 민원인은 주로 학부모라는 지위를 갖고 있고, 민원의 내용이 아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특이점이 있다. 소중한 우리 아이가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당했을 때 일의 경중과 상관없이 화가 폭발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요즘 교사가 학생을 때리거나 폭언하는 건 너무 드물어서 뉴스에 나올 일이기에 주로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난 문제로 학부모의 민원을 받는다. 아이들끼리 싸워서 한쪽이 살짝 맞았거나 서로 장난치다가 상처가 생긴 경우에 교사가 고스란히 욕받이 무녀가 되어야 한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상대편 부모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전달해 달라’, ‘아이가 다친 걸 보니 속이 상한다’고 말하는 것까지는 충분히 공감하면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교사도 죄송하다, 앞으로 더 잘 살펴보겠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말조차 나오지 않는, 정도를 넘어서는 악성 민원인들의 특징은 대체로 비슷하다. 끝없는 문자 폭탄, 전화상으로 소리 지르며 자신의 분 풀기, 상담 시간 정하지 않고 예고 없이 학교에 쫓아와서 노발대발하기 등등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하는 게 아이가 학교에서 겪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조언해주는 커뮤니티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단언컨대 이런 방식은 전혀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 교사에게 폭언과 욕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교사가 학생을 때린 게 아닌데 이렇게까지 교사에게 분풀이할 일인가 싶기도 하다.

 

스승이나 선생은커녕, 교육이 아닌 보육 공무원에 가까워지는 현실. 교사가 학교에서 일 안 하면서 돈 받는 집단이라고 매도되는 현실. 학부모가 언제든 교사에게 악성 민원을 걸며 괴롭힐 수 있는 현실에 필요한 건 구색 맞추기에 불과해진 스승의 날보다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아닐까 싶다. 21세기 교사에게는 존경보다 보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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