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성(전 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376쪽·312쪽 / 각 1만 6800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이 국내에 출간됐다.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져나가던 2020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이 작품은 그 영향을 받아, 베르베르의 전작들에 비해 디스토피아 성격이 강하다.
책에는 땅에 발을 딛지 않고, 고층 빌딩에 숨어 사는 신인류가 등장한다.
전쟁과 테러, 감염병 등으로 황폐해져 전 세계 인구가 8분의 1로 줄어든 세상. 시스템이 마비된 도시는 쓰레기와 쥐들로 뒤덮였다.
주인공 고양이 ‘바스테트’는 쥐들이 없는 세상을 찾아 ‘마지막 희망’호를 타고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향한다. 하지만 뉴욕에 도착한 바스테트 일행을 기다리는 건, 알 카포네라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쥐 군단의 공격이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바스테트의 눈에 들어온 고층 빌딩. 건물의 꼭대기에는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고, 드론 한 대가 날아온다. 뉴욕에는 약 4만 명의 인간이 쥐를 피해 200여 개의 고층 빌딩에 숨어 살고 있었다.
그 중 프리덤 타워에는 102개 인간 집단을 대표하는 총회가 존재하는데, 총회에서는 쥐를 없애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자는 강경파가 등장하며 갈등이 심해진다. 바스테트는 103번째 대표 자격을 요구하지만 인간들은 고양이의 의견이라며 이를 무시한다.
‘행성’만 독립적으로 읽어도 지장이 없지만, 작품은 2018년에 출간된 ‘고양이’에서 시작한다. ‘고양이’에서 지난해 나온 ‘문명’으로 이어진 모험은 ‘행성’으로 끝을 맺는다.
‘행성’은 앞서 발표한 두 소설에 비해 인간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정치인, 군인, 과학자, 종교인 등 다양한 인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살아남은 인류의 총회를 이끄는 의장 힐러리 클린턴, 로봇 공장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창립자 마크 레이버트 등 실존 인물에서 따온 캐릭터들도 있다.
인간 캐릭터들은 동물 캐릭터들과 비교된다. 현재 인간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 주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결책을 생각해 보게 하기도 한다.
나는 이제 인간들의 문명이 와해한 이유를 좀 더 분명히 알 것 같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에서 존재 이유를 찾으려 한다. (2권 67p 중에서)
특히 핵폭탄 사용을 주장하는 강경파들은, 갈등을 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베르베르는 개미나 고양이 같은 동물, 신이나 천사 같은 초월적 존재를 내세워 새로운 시각으로 인간 세상을 그려 왔다. 인간 조연, 동물 주연인 이 3부작에서 작가는 ‘이 세상은 인간의 것만이 아니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