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같이 흥이 많은 민족도 없을 상 싶다. 어느 곳을 가나 하나 같이 가수고 댄서다. 그리고 무슨 한이 그렇게 많은지 고성방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무음곡은 삼국유사, 삼국사기에도 나올 정도로 고래로 생활 속에 파고들었고 대중화 되었다.
2000여 년 전 진한과 마한에서 가무음곡을 즐겼다는 기록이 있고 이후 신라?백제에서는 국가행사로 가무음곡이 곁들인 가을 추수 축제를 벌였다. (삼국사기?삼국유사)
사실 가무음곡은 삶의 질을 높이고 정서를 순화하는 순기능이 강하다. 특히 동류성을 재확인하여 단결?화합을 유도하는 기능은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다.
그러나 매사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쳐서 좋을 리가 없다. 악명 높은 연산군이 못쓰게 된 데에는 지나친 가무음곡이 씨가 되었다. 연산군은 왕위에 오른 지 4년째가 되던 해에 무오사화를 일으켜 자신에게 각을 세웠던 훈신세력과 사림세력을 추출 왕권을 확립하고는 연일 향연을 즐겼다. 연산군은 이도 모자라 기생을 궁으로 끌어 들였다. 궁중으로 끌여드린 기생을 흥청이라고 했다. 지금의 흥청거리다의 어원이 기생에서 연유한 것이다.
연산군의 연이은 흥청파티로 국고도 거덜 나고 말았다. 국가재정을 충당하려다보니 백성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공신들에게 내린 공신전조차 회수하려했다. 물론 반발이 거셌다. 조정대신들은 연회를 줄이고 국고를 아낄 것을 간청했다.
갑자사화의 빌미가 된 것이다. 임사홍의 밀고로 친모이면서 성종의 폐비인 윤씨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연산군이 일대 복수극을 벌인 것이다. 패륜의 극치를 보인 것이다. 결국은 본인도 이 사화가 단초가 되어 쿠데타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흥청거리다 나라재정을 거덜 내고 본인도 목숨을 잃은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삼가(敬)해서 나쁠 것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