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시청률을 높이고 있다.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는 많다. 그러나 수장(水將)으로서의 전공기가 대부분이었다. 이순신이 이끄는 전함은 언제나 승리를 거두고, 그 선두에는 괴력을 지닌 거북선이 있었다. 거북선은 이순신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북선은 그 이전에 있었기 때문에 이순신이 만든 것은 아니다.
좮태종실록좯에 보면 1412년 태종이 왕세자(훗날 세종)와 함께 임진강을 건너가다 훈련 중인 거북선을 본 것으로 되어 있고, 또 1414년 7월 16일에는 좌대언(左代言:좌승지) 탁신이 태종에게 거북선의 우수함을 아뢰고 있다. 이순신은 거북선을 발명하지 않았지만 거북선을 잘 활용해 큰 전과를 올렸으니 돌맹이를 보석으로 바꾼 셈이고, 그만큼 운도 좋았다 할 것이다. 이순신의 청년기는 순탄하지 않았다. 28살 때인 1572년(선조 5) 무과에 응시했다 낙방했고, 4년 뒤 무과에 급제했으나 3등급에 해당하는 병과로 관직에 나섰다. 1587년(선조 20) 10월 함경도 변방의 만호로 있던 이순신은 오랑캐의 습격으로 적지 않은 병마(兵馬)를 잃었다.
이 때문에 투옥되고, 비변사에서는 그의 중벌을 상주했다. 그러나 선조는 이를 뿌리치고, 오히려 1591년(선조 24) 정3품 벼슬인 전라좌수사로 임명했다. 조정에서는 전례가 없는 인사라며 반발했지만 왕은 물러서지 않았다. 1591년 2월 16일자 좮선조실록좯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현감(종6품)으로서 아직 군수(정4품)도 역임하지 않았는데 좌수사로 임명하시니, 그것이 인재가 모자란 탓이긴하지만 관직의 남용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 이에 대해 왕은 “나도 안다. 다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다. 인재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이 충분히 감당할 터인즉 관직의 고하를 재론하지 말라.” 이순신은 선조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순신은 6년에 걸친 임진왜란을 평정했기 때문이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