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列强)의 조선에 대한 이권 침탈(利權侵奪)이 시작된 것은 1876년 개항 이후부터였다. 무력을 앞세운 불평등조약에서 조선은 관세협정권, 외국화폐통용권, 내지통상권, 연한해운권을 비롯한 상권과 경제 주권 등 모든 권리를 침탈 당했다. 이같은 이권 침탈은 이른바 최혜국(最惠國) 대우라는 명목아래 이루어졌다. 최혜국은 말그대로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나라를 말한다면 어느 나라가 되었던 하나이어야 하는데 이 때의 최혜국은 너도 나도였다. 1895년 고종이 세자와 함께 아관파천(俄館播遷)한 이후에는 직접 자본 투자를 통한 이권 침탈이 가속화돼 조선은 완전히 열강들의 이권 전쟁터나 다름이 없었다. 이즈음 일본은 경부철도 부설권을 비롯해 경인철도권, 경기도 연해 어업권, 인삼 독점수출(1901)을 따냈고, 미국은 평북 운산 금광 채굴권을 비롯해 서울 전기·수도 시설권(1897), 서울 전차 부설권을 차지했다.
러시아는 함북 경원·조성 금광채굴권을 비롯해 인천 월미도 저탄소 설치권, 부산 절영도 저탄소 설치권 등을 따냈고, 영국은 평남 은산 금광 채굴권을 차지했다. 프랑스는 경의철도 부설권을 따냈지만 일본ㅈ에 팔아 먹었고, 평북 황성 금광과 평양 무연탄 광산 채굴권을 차지했다. 독일도 강원도 금성 당현 금광 채굴권을 따냈다. 열강이 눈독을 들인 것이 금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고종에게 사례금 20만원과 매월 4천100원을 내고 차지한 운산 금광에서 1902년부터 1915년까지 생산해 간 금은 4천950만원 어치로 당치 조선의 전체 세입은 600여만원 밖에 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금광이 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금은 바닥이 났다. 열강이 파간 탓이다. 이 시절 조선인이 금광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터치(No Touch)를 연발했는데 우리 감각으로 노터치가 아니라 노다지였던 것이다. 과거지사로 여기기에는 분노가 뒤따른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