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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80. 조선시대 한류스타 허난설헌(許蘭雪軒)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가을 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허난설헌(1563~1589)의 시 ‘감우(感遇)’이다.

 

난설헌은 생애 자체가 난초 같았다.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에 난설헌의 묘가 있다. 이름은 초희(楚姬), 본관은 양천, 자는 경번(景樊)이다. 묘 옆으로 어린 나이에 죽은 두 자녀의 무덤이 있고, 왼쪽으로는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홍길동전’을 쓴 허균(許筠)의 누이로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알려졌는데 안타깝게도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달리했다.

 

 
지월리는 설월(雪月), 경수(鏡水) 두 마을이 있는데, 경상도의 선비가 과거 보러 가던 중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내린 눈 위로 달빛이 비쳐 선경(仙境)처럼 아름다웠기에 이 마을을 ‘설월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수마을은 조선 선조 때에 이 마을에 낙향해서 살던 노은(老隱) 김정림(金正立)이 명경지수(明鏡止水)란 말에서 두 자를 따서 ‘경수’(鏡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혹은 이 마을 앞으로 흐르는 냇물이 거울같이 맑고 깨끗해서 ‘경수’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집안살림이나 지키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역할만으로 순응하며 살아야 했는데, 난설헌은 자신의 시로서 그 이름을 남겼고, 그녀의 시는 중국과 일본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낸 허난설헌은 나이 8세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글을 지어 주변의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 시에서 난설헌은 나이의 한계와 여성이라는 굴레를 모두 벗어버린 셈이다.
 

 

난설헌의 친정은 아버지 허엽과 오빠 허봉의 잇따른 객사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두 명의 아이는 돌림병으로 잇달아 잃었고 뱃속의 아이를 유산하는 불행을 당한다. 이때의 슬픔을 그녀는 ‘곡자(哭子)’라는 시로 남겨놓았다. 몰락하는 친정에 대한 안타까움,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슬픔 등으로 허난설헌은 건강을 잃고 점차 쇠약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시를 남겼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새(鸞)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난설헌은 부용꽃 스물 일곱 송이처럼 27세의 나이로 목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허난설헌 사후 남양 홍씨와 재혼하였지만 곧이어 터진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 싸우다 전사하였다.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은 난설헌의 시를 보고 매우 경탄하고 중국에서 ‘허난설헌집’을 발간하였다. 1711년에는 일본의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간행되어 중국과 일본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서애 유성룡은 난설헌의 시에 대해, "말을 세우고 뜻을 창조함이 허공의 꽃이나 물속에 비친 달과 같아서 맑고 영롱하여 눈여겨볼 수가 없고, 울리는 소리는 형옥(珩玉)과 황옥(璜玉)이 서로 부딪치는 것 같으며, 남달리 뛰어나기는 숭산(嵩山)과 화산(華山)이 빼어나기를 다투는 듯하다. 가을 부용은 물 위에 넘실대고 봄 구름이 허공에 아롱진다. 사물을 보고 정감을 불러일으키며 시절을 염려하고 풍속을 근심함에는 종종 열사(烈士)의 기풍이 있다. 조금도 세상에 물든 자국이 없다." 하였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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